이명은 시은(時殷). 경기도 안성 출신. 대한제국의 군인으로 복무하던 중 1907년 8월 군대가 강제로 해산되자 의병으로 전신하여 여주·원주 등지에서 활동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 뒤 1919년 3·1운동 때는 안성 일대의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안성군의 경우 처음에는 원곡면과 양성면에 별도로 만세시위가 일어났지만, 4월 1일에는 두 면이 합동으로 시위를 벌여 대규모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이날 이유석(李裕奭)·홍창섭(洪昌燮)·이덕순(李德順)·최은식(崔殷植) 등과 함께 원곡면사무소 앞에 1,000여 명의 군중을 모아놓고 독립만세를 선창한 뒤 시위행진, 일본경찰주재소를 습격·방화하였다.
다음에는 우편소에 들어가 집기와 서류를 파손하는 한편, 전신주를 넘어뜨리고 전화선을 절단하여 통신을 두절시켰으며, 면사무소에서는 호적부를 소각하고 기물을 파괴하였다. 또한 일본경찰들을 붙잡아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게 하는 등 이 날의 격렬한 시위를 주도하다가 붙잡히고 말았다.
그 뒤 1920년 8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건조물 소훼·손괴, 기물손괴, 주거침입, 강도, 소요, 전화법위반죄로 유죄판결을 받고 1921년 1월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