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때,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과 양성면 일대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안성군의 경우 처음에는 원곡면과 양성면에 별도로 만세시위가 일어났지만, 4월 1일에는 두 면이 합동으로 시위를 벌여 대규모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이날 이유석(李裕奭)·홍창섭(洪昌燮)·이덕순(李德順)·최은식(崔殷植) 등과 함께 원곡면사무소 앞에 1,000여 명의 군중을 모아놓고 독립만세를 선창한 뒤 시위행진, 일본경찰주재소를 습격·방화하였다.
다음에는 우편소에 들어가 집기와 서류를 파손하는 한편, 전신주를 넘어뜨리고 전화선을 절단하여 통신을 두절시켰으며, 면사무소에서는 호적부를 소각하고 기물을 파괴하였다. 또한 일본경찰들을 붙잡아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게 하는 등 이 날의 격렬한 시위를 주도하다가 붙잡히고 말았다.
그 뒤 1920년 8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건조물 소훼·손괴, 기물손괴, 주거침입, 강도, 소요, 전화법위반죄로 유죄판결을 받고 1921년 1월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독립유공자공훈록』9(국가보훈처, 1991)
- 『독립운동사자료집』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 『독립운동사』2(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