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의 표면장식 기법 중 일정한 문양도장을 가지고 압인(押印)하는 기법으로, 문양의 종류에는 꽃모양 이외에 여러 가지가 있다.
인화기법의 연원은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에서부터 볼 수 있고, 통일신라시대의 인문토기(印文土器)에서는 상당히 세련된 문양을 보이며 골호에 그 예가 많이 남아 있다. 고려의 상감청자에서도 기면(器面)의 중심문양은 아니지만 부속문양으로서 도장을 찍은 뒤 흑백상감을 한 예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인화기법이 중심문양으로서 그 본격적인 아름다움을 발휘한 때는 15세기 분청사기(粉靑沙器)에서이다. 고려청자의 상감기법에 속하나 도장을 찍은 뒤 주로 백토(白土)를 감입(嵌入 : 박아 넣음)하므로 별도로 구별하여 분청사기 인화기법이라고 한다.
14세기 말부터는 대접 내면에 간략하게 한 줄의 국화(菊花)·화(花)·육각판(六角瓣)·삼원(三圓)·육원(六圓) 등이 압인된다.
15세기 전반에서 중엽경이 되면 여러 개의 화문이 한 줄로 집단화되어 이른바 집단연권문(集團連圈文)으로 발전하며, 기면 전체를 빈틈없이 꽉 메운 때가 인화기법의 절정기이다. 15세기 후반부터는 문양의 짜임새가 해이해져서 퇴조현상을 나타내다가 16세기에는 거의 사라진다.
인화분청사기에는 제작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관사명(官司名)이 새겨져 있는 그릇이 많고, 또한 관사명과 함께 지방명이 새겨져 있어 그 제작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분청사기에서는 인화기법으로 만들어진 것이 각 지방의 중앙 상납품이었음을 시사한다.
인화분청사기는 전국의 요지(窯址)에서 수집되며, 특히 경상도지방에서 정교한 인화기법의 그릇들이 많이 생산되었음을 경상도지방의 이름이 새겨진 관사명 그릇을 통해서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