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鎭州). 무신집정 임연(林衍)의 아들이며, 임유무(林惟茂)의 아우이다.
1269년(원종 10) 태자 왕심(王諶: 충렬왕)이 몽고에 입조(入朝)할 때 시종하였으며, 곧 귀국하여 우승선에 임명되었다.
이 해에 원종이 몽고에 가자, 이전에 임연이 원종을 폐위하였던 사실을 숨기기 위하여 왕과 함께 몽고에 갔다. 다음 해에 임유무가 제거되면서 아우 임유거(林惟柜)·임유제(林惟提)와 함께 몽고로 압송되었다.
1272년(원종 13)에는 몽고에서 세조(世祖)에게 귀국시켜줄 것을 요청하여 전에 빼앗겼던 전민(田民)과 재물을 되찾으려 하였으나, 당시 몽고에 있던 태자 왕심에 의하여 저지당하였다.
또한, 고려에 화웅피(火熊皮)가 있다고 거짓으로 보고하여, 몽고가 사신을 보내어 이것을 진상하도록 요구하게 하였다. 1276년(충렬왕 2)에는 몽고의 사신으로서 귀국하여 직접 탐라(耽羅)에 가서 구슬을 구하였으나 찾지 못하자 백성들이 가지고 있던 것 100여 개를 빼앗아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