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이기일의 아들 이우석(李愚碩)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송준필(宋浚弼)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이휘기(李徽基)의 발문이 있다.
2권 1책. 석인본.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권1에 시 50수, 서(書) 49편, 서(序) 1편, 설(說) 4편, 잡저 3편, 축문 1편, 유사 4편, 제문 6편, 애사 1편, 권2에 부록으로 만장 17수, 뇌문 2편, 애사 1편, 제문 13편, 가장 1편, 행장 1편, 묘지명 1편, 묘갈명 1편, 고유문 1편, 임재기(臨齋記) 1편, 구암정기(龜巖亭記)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주로 명승고적을 찾아 불우한 회포와 강개한 심정을 달래면서 위기를 맞아 갈팡질팡하는 국정에 대해 개탄하고 있다. 모든 세상사를 잊고 냉정하게 관망하거나 선계와 같은 무인지경으로 도피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지만 그러지 못하는 자신을 괴로워하고 있다. 「홍류동(紅流洞)」에서는 가야산의 홍류동을 찾아 최치원(崔致遠)의 유적을 더듬으며, 당시의 상황이 자신이 처한 환경과 비슷함을 깨닫고 홍류동 맑은 계곡에 몸과 마음을 던져 깨끗이 씻고 싶은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서의 「상사미헌선생(上四未軒先生)」은 스승 장복추(張福樞)에게 올린 편지로, 학문하는 방법을 지시에 따라 실천해보니 확실히 진보가 있었다고 전제하고, 계속 지도해줄 것을 청하면서 예설과 경전의 어려운 곳을 질의하였다. 「유일본중대문(諭日本中隊文)」은 일본 헌병중대장에게 보낸 편지로, 일본과 한국은 선린 우호의 관계를 지켜 수호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강한 군대의 힘을 믿고 국민을 핍박함은 부당한 처사라고 지적하였다. 덧붙여 과거 임진왜란으로 우리 국민을 괴롭히다가 불행한 참패로 끝난 전철을 밟지 말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그밖에 바다의 조수가 과학적인 근거에 의해 이루어짐을 밝힌 「해조설(海潮說)」과 기행문인 「동행록(東行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