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도립중학교(道立中學校) 한국인 학생과 졸업생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단장 최경선(崔經洗)을 비롯한 단원 1,100여 명과 5연발 총 40여 정이 있었다. 단원인 도립중학교 학생대표 최웅렬(崔雄烈)·김필수(金弼守) 등은 독립운동에 관한 연설을 하여 학생들을 규합하려고 하였다.
1919년 3월 용정촌(龍井村)의 독립만세시위 때에도 이 단체의 단원들이 가담하였는데, 그 중에는 권총을 소지한 단원이 30여 명 있었다. 그러나 이 시위에서 시위를 제지하기 위하여 출동한 중국군의 발포로 14명이 사망하고, 30여 명이 부상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