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계 중에는 그 내용이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하여 『승정원일기』·『일성록』 등의 관찬사서와 문집에 소개되거나 전재된 것도 있다.
문집에서는 이 장계를 서장(書狀)에서 다루고 있다. 장계는 그 시대·지방의 중요한 사건을 보고 또는 청원한 것이므로 사료로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장계는 주첩(周帖 : 두루마리)으로 하고, 합금(合襟)된 오른편에 ‘承政院開坼(승정원개탁)’이라 쓰고, 합금된 아래쪽에 ‘신서명근봉(臣署名謹封)‘이라 쓴다.
즉, 장계는 승정원에서 뜯어보고 담당승지가 이를 왕에게 올려서 왕의 재가를 받은 다음, 계하인(啓下印)을 찍고 그 장계의 내용과 관계있는 관서에 하달하게 된다. 『충무공전서(忠武公全書)』에서의 장계는 계본(啓本)의 착오이며, 「임진장초(壬辰狀草)」도 장계초가 아니라 대부분 계본초이다.
원문서형태의 장계로서 현재 전하여지고 있는 것은 규장각고문서 중에 1894년(고종 31) 동학혁명 당시 경상도관찰사·전라도병마절도사 등이 동학군의 동태를 종합하여 보고한 10여 통의 장계가 있고, 규장각도서에도 1883∼1887년의 장계 원본 8통이 있다.
『심양장계(瀋陽狀啓)』는 장계를 올릴 때 이를 등서하여놓은 책으로 매우 귀중한 사료이다. 이러한 장계의 원본은 물론이고 등서본(謄書本)도 사료로서의 가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