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계(狀啓)는 조선시대 왕명을 받아 외방에 나간 신하가 왕에게 보고를 위해 올린 문서이다. 주로 관찰사(觀察使), 절도사(節度使), 유수(留守) 등 2품 이상의 관원이 사용하였고, 일부 변경의 수령 및 찰방(察訪)도 장계를 사용할 수 있었다. 이 외에 암행어사를 비롯한 봉명사신(奉命使臣)도 장계를 올렸고, 국왕이 도성(都城) 밖으로 행차하였을 때는 도성에 있는 신하가 장계로 보고하기도 하였다.
외관이 왕에게 보고하는 문서는 장계와 함께 계본(啓本)이 대표적이다. 계본은 주로 일상적이고 정기적인 업무에 사용하였고, 장계는 그에 비해 비정기적인 업무 및 시급한 사안에 사용하였다. 장계의 보고 사안은 농정(農政)과 진휼(賑恤)에 관한 것이 많고, 외관의 특성에 따라 군무(軍務), 진상(進上), 사행(使行) 등의 일로 장계를 올렸다.
장계의 문서식은 『전율통보(典律通補)』에 수록되어 있는데, 승정원(承政院)을 통한 간접 보고 형식으로 작성된 것이 특징이다. 장계의 외면에는 승정원에서 열어보라는 의미로 ‘승정원개탁(承政院開坼)’이라고 썼으며, 본문 마지막에는 승정원에서 잘 아뢰어 달라는 의미로 ‘전차선계향교시사(詮次善啓向敎是事)’라는 종결어를 썼다. 또한 장계는 사안의 시급성으로 인해 문서에 관인을 답인(踏印)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보고된 장계는 왕의 재가를 받아 계자인(啟字印)을 답인하고 여백에 처결을 기재하였으며 이후 관련 아문에 전달하여 시행하였다.
현전하는 장계는 주로 감영(監營) 등에서 발급한 문서를 등록으로 전재하여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기영장계등록(畿營狀啓謄錄)』, 『영영장계등록(嶺營狀啓謄錄)』, 『의주부장계등록(義州府狀啓謄錄)』 등이 있다. 장계 원본으로서 현전하는 것은 수십 점에 불과하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30여 점이 소장되어 있으며, 강릉 선교장(船橋莊)에 10여 점이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