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인동(仁同). 일명 동한(東翰). 자는 순명(舜鳴), 호는 과재(果齋) 또는 일범(一帆). 아버지는 참판 장시표(張時杓)이며, 어머니는 정완(鄭垸)의 딸이다. 족대부(族大父) 장복추(張福樞)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82년(고종 19)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893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 홍문관수찬·사헌부정언 등을 거쳐 1898년 통정대부에 오르고, 1900년 비서원승(祕書院丞)이 되었다. 1901년 관직에서 물러나면서 9조의 소(疏)를 올렸는데 모두 시사(時事)의 급무(急務)였다.
1905년 이완용(李完用) 등 을사오적이 왜병을 이끌고 대내(大內)로 들어와 을사조약을 체결하였다는 변고를 듣고 협약의 철회와 적신(賊臣)을 죽일 것을 상소하였고,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제병합하여 국권이 상실되자 가야산(伽倻山)으로 들어가 두문불출,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 저서로는 『과재문집』 11권 5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