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큰 화강암 바위를 깊이 5㎝, 가로 1.31m, 세로 2.53m의 장방형으로 평평하게 갈아내고 거기에 글씨를 새긴 형태의 비석이다.
이 비는 ‘동정시비(東征詩碑)’라고도 하는데, 이는 비문 중에 ‘東征詩’라는 글자가 제일 첫 줄에 나오기 때문이다. 이 비문의 둘레에는 당초문을 아름답고 정교하게 새겼다.
비문의 내용은 임진왜란 때 원군으로 와서 임진왜란의 강화회담을 주재했던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과 진린(陳璘)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다. 즉, 그들이 조선에 원군으로 남해에 와서 왜군을 무찔렀다는 내용과 함께 자신들의 우월성을 나타내는 전승기념비적 성격을 띠고 있다.
독공정왜유격장군 장양상(督工征倭遊擊將軍 張良相)의 이름으로 비를 새겼다. 그러나 이곳 근처 현재의 천남대(天南臺)라는 곳에 왜성(倭城)이 남아 있고, 선소리 앞 바다에서 명나라의 수군과 왜적이 격전을 벌였다는 기록이 없어 신빙성이 없는 비문이라 하겠으나 구체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대체로 명나라의 유격장군인 장양상이 이 비문을 새긴 정확한 연대는 아마 왜장 고니시(小西行長)가 이순신장군에 의해 퇴로가 봉쇄되어 대패당한 노량해전의 직후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 이듬해인 1599년(선조 32) 이곳에 진주하여 비문을 새긴 것으로 추측된다.
이 비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어려운 마애비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으며, 특히 역사에서 밝혀지지 않은 명나라 장수의 마애비라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