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 길림성 반석현(吉林省磐石縣)에서 한족노동당(韓族勞動黨)의 발전적 개편에 의해 1928년 2월 조직되어 당시 ML파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의 외곽단체 구실을 하였다.
회원이 3,000명 내지 4,000명으로 중앙집행위원장 김응섭(金應燮), 중앙집행위 책임비서 김상덕(金尙德), 중앙집행위원 김원식(金元植)·이광민(李光民)·이동일(李東一)·최동산(崔東山) 등으로 구성되었다.
만주 한인사회의 대다수가 농민이었기 때문에 종래 한족노동당 강령을 바꿔 일제를 박멸하고 조선의 절대 독립을 기하며, 농민대중의 경제적·정치적·사회적 특수요구의 근본적 해결을 도모하고, 토지의 국유화 및 경작자의 사용권 획득을 목적으로 하며, 농민을 폭압하고 침해하는 일체의 악법 및 악세력을 절대 박멸할 것을 기하고, 세계혁명이론 및 실천을 지지, 국제노동전선과의 전투적 통일을 기한다고 하였다.
1928년 5월 길림성 화전현(樺甸縣)에서 정의부(正義府)를 비롯한 18개 단체 대표가 모여 유일당촉성문제를 토의할 때 김응섭 외 2명을 대표로 파견하였으며, 이때 남북만청년총동맹(南北滿靑年總同盟) 등과 좌파를 형성하여 정의부 등의 우파세력에 대립하였다.
또 종래 한족노동당의 기관지 『노동보(勞動報)』를 『농보(農報)』로 개제, 간행하였다. 그러나 이밖에 어떤 사업을 조직하고 전개하였는지에 대해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1930년 7월 만주의 조선공산당 조직이 해체되고 중국공산당 만주성위원회에 한국인 공산주의자들이 들어가게 될 때 이 동맹도 해체되고 전만농민협회(全滿農民協會)에 흡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