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895년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 전봉준이 법정의 심문에 답한 내용을 기록한 문서. 공초.
개설
내용
여기에서 전봉준은 처음 고부민란의 단계에서는 봉기한 농민 중 동학교도는 적었고 원민(寃民)이 더 많았고 지방관의 가렴주구에 대한 항거로 봉기가 불가피했다고 답변하였다.
이 초초문목에서 전봉준은 동학교문과의 관계를 분명히 하고 있지 않지만, 재초문목에서는 자신이 동학의 접주임을 분명히 밝히고 손화중(孫和中) · 최경선(崔慶善) 등 다른 동학 접주와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또한 동학의 교리적 성격, 교단의 직제까지 설명하고 그가 동학교문에 입도하게 된 까닭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제3 · 4 · 5초문목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심문의 대부분이 그와 대원군과의 관계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전봉준은 대원군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밖에 동학농민혁명의 원인, 경과 등에 걸친 그의 진술이 잘 나타나 있다.
전봉준 공초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원본이 소장되어 있다. 1959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이를 대본으로 하여 한국사료총서 10, 『동학란기록』 상 · 하 2권 중 하권에 수록하였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동학란기록(東學亂記錄)』 상·하(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료총서 10, 1959)
- 「전봉준(全琫準)과 동학농민혁명(東學農民革命)」(김창수, 『한국근대(韓國近代)의 민족의식운동(民族意識運動)』, 동화출판공사, 1987)
- 「동학사상(東學思想)과 민중봉기(民衆蜂起)」(김창수, 『숭산박길진박사고희기념(崇山朴吉鎭博士古稀紀念) 한국근대종교사상사(韓國近代宗敎思想史)』, 1984)
- 「전봉준공초(全琫準供草)의 분석(分析)-동학란연구(東學亂硏究)-」(김용섭, 『사학연구(史學硏究)』 2,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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