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출신. 1923년 당시 경성우편국 우체부로 근무하였다. 1919년부터 김상옥(金相玉) 등과 함께 혁신단(革新團)을 조직, 기관지인 『혁신공보(革新公報)』를 제작하여 반포하고, 이듬해 5월 김상옥을 중심으로 하는 암살단 조직에 가담, 인의동 자택을 연락장소로 제공하였다.
1922년 12월 독립운동을 위하여 상해에서 서울로 온 김상옥·안홍한(安弘翰)과 만나서 서울 시내의 부호들로부터 군자금을 모금하고 독립운동취지서를 배포할 것을 모의하였다.
그날 김상옥으로부터 독립운동을 위하여 상해에서 가져온 권총과 탄약이 들어 있는 트렁크식의 나무상자 하나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남대문역(지금의 서울역)에 가서 이것을 찾아 집에 보관하였다.
다음날 이 상자에서 꺼낸 권총 한자루와 탄알 수십개를 찬장 속에 보관하였다가 김상옥의 지시로 신화수(申華秀)·서병두(徐丙斗) 등 여러 사람에게 전달하였다. 이어 서병두의 집에서 독립운동에 관한 취지서 및 독립운동자금영수증의 모형을 떠 인쇄를 부탁하였다.
1923년 3월 잡혀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았다가 이듬해 징역 1년 10월 15일로 감형되었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