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화국(華國), 호는 삼두(三斗). 보성 출신. 아버지는 정세적(鄭世迪)이며, 어머니는 죽산안씨(竹山安氏)로 통정대부 안지석(安之碩)의 딸이다. 권상하(權尙夏)·홍중하(洪重夏)의 문인이다.
1711년(숙종 37)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부사정에 제수되었다. 그때 왕을 배알하였는데, 용모·문장·지벌(地閥)의 세가지 자격조건을 모두 갖추었다는 뜻으로 숙종이 삼두라는 호를 내렸다. 그 뒤 서학훈도(西學訓導)를 거쳐 1716년 감찰에 임명되었으며, 승문원교검에 승진되고, 이듬해 형조좌랑이 되었다.
1722년(경종 2) 감찰에 재임명된 뒤 예조좌랑을 거쳐 창녕군수로 나갔는데, 이 해에 흉년으로 많은 기민(飢民)이 발생하자 이를 구휼하는 데 온힘을 기울였다. 1728년(영조 4) 괴산군수로 있을 때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오명항(吳命恒)을 도와 반란을 진압하는 데 앞장섰다.
1731년 마전군수(麻田郡守)가 되어 각종 병폐를 일소하는 데 힘썼으며, 1735년 우통례를 거쳐 1739년 예조좌랑 겸 춘추관기사관이 되고, 그 이듬해 예조정랑 겸 춘추관기주관에 승진되었으며, 1741년 이조정랑이 되었다. 정호(鄭澔)·민진원(閔鎭遠) 등 선배들과 도의로 교유하였다. 1750년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삼두집(三斗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