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윤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후기 예조정랑, 춘추관기주관, 이조정랑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이칭
  • 삼두(三斗)
  • 화국(華國)
인물/전통 인물
  • 본관하동(河東)
  • 사망 연도1746년(영조 22)
  • 성별남성
  • 주요 관직괴산군수|마전군수|이조정랑
  • 출생 연도1682년(숙종 8)
  • 출생지보성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민식 (한학자)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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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예조정랑, 춘추관기주관, 이조정랑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개설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화국(華國), 호는 삼두(三斗). 보성 출신. 아버지는 정세적(鄭世迪)이며, 어머니는 죽산안씨(竹山安氏)로 통정대부 안지석(安之碩)의 딸이다. 권상하(權尙夏)·홍중하(洪重夏)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11년(숙종 37)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부사정에 제수되었다. 그때 왕을 배알하였는데, 용모·문장·지벌(地閥)의 세가지 자격조건을 모두 갖추었다는 뜻으로 숙종이 삼두라는 호를 내렸다. 그 뒤 서학훈도(西學訓導)를 거쳐 1716년 감찰에 임명되었으며, 승문원교검에 승진되고, 이듬해 형조좌랑이 되었다.

1722년(경종 2) 감찰에 재임명된 뒤 예조좌랑을 거쳐 창녕군수로 나갔는데, 이 해에 흉년으로 많은 기민(飢民)이 발생하자 이를 구휼하는 데 온힘을 기울였다. 1728년(영조 4) 괴산군수로 있을 때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오명항(吳命恒)을 도와 반란을 진압하는 데 앞장섰다.

1731년 마전군수(麻田郡守)가 되어 각종 병폐를 일소하는 데 힘썼으며, 1735년 우통례를 거쳐 1739년 예조좌랑 겸 춘추관기사관이 되고, 그 이듬해 예조정랑 겸 춘추관기주관에 승진되었으며, 1741년 이조정랑이 되었다. 정호(鄭澔)·민진원(閔鎭遠) 등 선배들과 도의로 교유하였다. 1750년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삼두집(三斗集)』이 있다.

참고문헌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삼두집(三斗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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