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료도위(定遼都衛)라고도 한다. 1371년(공민왕 20) 원나라의 유신 요양행성평장정사(遼陽行省平章政事) 유익(劉益)이 요양을 들어 투항하자 행성을 폐지하고 설치하였는데, 1375년(우왕 1) 요동도지휘사사(遼東都指揮使司 : 遼東都司)로 개편하여 중앙의 좌군도독부(左軍都督府)에 소속시켰다.
그러나 고려측 기록에는 요동도지휘사사로 개편된 이후에도 그대로 정료위로 나타난다. 관할지역은 동으로는 압록강, 서로는 산해관(山海關), 남으로는 여순해구(旅順海口), 북으로는 개원(開元)에까지 이르렀으며, 그 아래에 2주(州)·25위(衛)가 속하여 있었다.
고려 말에 명나라와의 관계에서 분쟁의 소지가 되었던 철령위(鐵嶺衛)도 이 25위 가운데 하나이다. 고려와 인접하였던 관계로 고려의 대명외교(對明外交)는 주로 이를 통하여 이루어졌으며, 특히 우왕 때에는 양국 관계가 불안정하였으므로 고려에서 통호(通好)를 구실로 이곳에 사신을 보내어 정탐하고 침략에 대비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1388년 명나라의 철령위 설치에 반발하여 고려에서는 요동정벌을 계획하고 이곳을 공격하려 하였으나 이성계(李成桂)의 위화도회군으로 중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