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곤지록」, 「이기집설」, 「가례차의」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후 이남산(尼南山) 밑에 옥간정(玉磵亭)·육유재(六有齋)·태고와(太古窩)·진수재(進修齋) 등을 지어 향단(香檀)과 청죽(靑竹)을 심고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또한 향음주례(鄕飮酒禮)와 투호(投壺)를 거행하기도 하였다.
학문세계와 저서
학설은 이황(李滉)의 이기이원론을 사상적 핵심으로 삼아 이(理)는 본연이요, 기(氣)는 성절(性節)로서 이는 허무공적(虛無空寂)이 아닌 만물을 생성하는 우주의 근원이요, 기는 칠정(七情)에서 나뉘어 용(用)이 수반되는 기질성(氣質性)으로 분리하니, 이는 곧 주(主)요, 기는 곧 자(資)라 정의하였다.
동생 정규양과 함께 「곤지록(困知錄)」·「이기집설(理氣輯說)」·「가례차의(家禮箚疑))·「개장비요(改葬備要)」·「의례통고(疑禮通攷)」·「상지록(尙知錄)」·「심경질의보유(心經質疑補遺)」·「계몽해의(啓蒙解疑)」·「외국지(外國誌)」·「산거일기(山居日記)」 등을 저술하였다. 또한 훈(塤)과 지(篪)는 피리에 속하는 악기 이름으로, 형은 훈을 불고 아우는 지를 불어 서로 조화된 음률을 이룬다는 뜻에서 동생 정규양과 함께 「훈지악보(塤篪樂譜)」를 지었다.
문장이 전아(典雅)하고 순수하며 진실하였고, 글씨에도 능해 전서(篆書)를 잘 썼다. 저서로는 『훈지문집(塤篪文集)』이 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훈지문집(塤篪文集)』
- 『묵헌집(默軒集)』
- 『무신창의록(戊申倡義錄)』
-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주석
-
주1
: 후에 모고헌(慕古軒)으로 개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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