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시대 전라도병마절도사, 동지중추부사, 훈련도정 등을 역임한 무신. 의병장.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에 추대되어 4,000여 명의 의병을 모집, 출신(出身) 김종민(金宗敏)을 중군(中軍)으로 삼고 미곶첨사(彌串僉使) 장사준(張士俊) · 이광립(李光立) 등과 함께 정예병을 양성하며 정세를 관망하고 있었다.
이 때 용골산성(龍骨山城)에는 철산(鐵山) · 의주 등지의 피난민이 모여 있었다. 이에, 조정에서는 고립된 이 성을 지킬 수 없다 하여 평안도관찰사에게 난민들을 산 속으로 피신하게 하고 전멸의 화를 입지 않게 종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봉수 등이 이 성을 고수할 것을 결의하자 조정에서 그에게 당상계(堂上階)를 주어 전군을 지휘하게 하였다.
그는 적에게 투항한 장사준 등을 참수하고 적의 침입에 대처하였다. 용골산성에서 많은 후금군을 살해하고 포로가 된 수천 명의 백성을 구출, 그 공으로 철산부사가 되었다. 이어 가선계(嘉善階)에 올라 용천부사 겸 조방장(龍川府使兼助防將)이 되었다. 곧 방어사(防禦使)와 의주부윤을 겸직하고, 적이 철수한 뒤 구성부사 · 개천군수 · 오위장이 되었다.
1630년 부총관으로 전라좌수사에 특제(特除)되었고, 이듬해 경상도병마절도사가 되어 가의대부(嘉義大夫)로 승계하였다. 이어 청북방어사(淸北防禦使)가 되었으며, 1634년 전라도병마절도사, 이듬해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 부총관 겸 훈련도정을 역임하였다. 철산의 충무사(忠武祠)에 제향되었으며, 시호는 양무(襄武)이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서계집(西溪集)』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주석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