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필 육상묘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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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묘도 / 정선
육상묘도 / 정선
회화
작품
문화재
조선 후기의 화가정선(鄭敾,1676-1759)이 그린 기록화.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보물(1986년 10월 15일 지정)
소재지
대전광역시 서구
정의
조선 후기의 화가정선(鄭敾,1676-1759)이 그린 기록화.
개설

1986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수묵 담채(水墨淡彩). 세로 146.5㎝, 가로 63㎝. 18세기의 진경산수화풍(眞景山水畵風)을 창시한 정선이 1739년(영조 15)에 서울 궁정동에 있는 육상묘와 그 뒤에 있는 백악산(白岳山)을 그린 것으로, 기록화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내용

육상묘는 본래 숙종의 후궁이자 영조의 사친인 숙빈 최씨(淑賓崔氏, 1670 ~ 1718)의 신주를 봉사하기 위하여 1725년(영조 6년)에 세워졌다. 처음에는 숙빈묘(淑嬪廟)라 지칭되었으나 1744년에 육상묘로 개칭되었다. 그리고 다시 1753년에 육상궁이라고 불리었다. 육상묘는 후대에 이웃의 다른 묘들과 함께 칠궁(七宮)이라고 불려진다.

이 「육상묘도」는 정선이 만 63세 때인 1739년[기미(己未)] 중춘(中春)에 그린 사실이 그림의 왼편 위쪽에 쓰여진 관기(款記)에 의하여 확인된다. 초가의 육상묘의 모습을 북악산을 배경으로 하여 보여 주는 일종의 기록화이면서 준법(皴法)·수지법(樹枝法)·옥우법(屋宇法) 등에서 전형적인 남종화법을 보여 주고 있다. 이를 통해 정선이 60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남종화풍으로 그림을 그렸음을 보여준다.

그림의 상단에는 육상묘의 영건에 관여하였던 조문명(趙文命)을 위시한 18명의 관원들의 부묘도감좌목(祔廟都監座目)이 적혀 있다. 그 하단에는 산수를 배경으로 한 육상묘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상단에 전서체(篆書體)로 쓴 제목(題目), 중단에 산수를 배경으로 한 행사 장면의 그림, 상단에 참석자의 명단을 적은 3단의 좌목으로 이루어진 그림 형식은 조선 초기 이래의 계회축(契會軸) 형식을 참고한 것이다. 좌목을 하단이 아닌 그림의 윗부분에 적은 것이 이례적이다.

근경에는 낮은 언덕들과 종류가 다른 나무들이 좌우에 적절히 배치되어 있다. 그 뒤편 중경에는 울타리로 둘러싸인 초가의 육상묘가 후경의 주산을 배경으로 서 있다.

의의와 평가

나무·집·산의 표현에는 남종화풍의 영향이 뚜렷하면서도 동시에 정선의 개성적인 화풍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가 남종화풍을 토대로 거장으로 대성하였음을 말해 준다.

참고문헌

『동산문화재지정보고서』-1986 지정편-(문화재관리국, 1988)
『한국회화의 전통』(안휘준, 문예출판사, 1988)
「조선후기 西村의 명소와 진경산수화의 재조명」(윤진영, 『서울학연구』5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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