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언신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우참찬, 병조판서,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나암(懶庵)
  • 입부(立夫)
인물/전통 인물
  • 본관동래(東萊)
  • 사망 연도1591년(선조 2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우의정|전라도도사
  • 출생 연도1527년(중종 2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장희 (성균관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전기에, 우참찬, 병조판서,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입부(立夫), 호는 나암(懶庵). 정걸(鄭傑)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홍손(鄭洪孫)이고, 아버지는 예조좌랑 정진(鄭振)이다. 어머니는 양천허씨(陽川許氏)로 부윤 허확(許確)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66년(명종 21)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검열이 되고, 1571년(선조 4) 호조좌랑으로 춘추관기사관이 되어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그 뒤 전라도도사·장령·동부승지 등을 거쳤다. 이후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함경도병마절도사로 나가 변민(邊民)을 잘 다스리고 녹둔도(鹿屯島)에 둔전(屯田)을 설치하여 군량미를 풍족하게 비축하였다. 이어 대사헌으로 옮겼다가 부제학이 되었다.

1582년(선조 16) 니탕개(尼湯介)가 쳐들어오자 우참찬으로 함경도도순찰사에 임명되어 막하로 이순신(李舜臣)·신립(申砬)·김시민(金時敏)·이억기(李億祺) 등 뛰어난 명장들을 거느리고 적을 격퇴하였다. 이어 함경도관찰사로 북쪽 변방을 방비하고 병조판서에 승진되었다.

1589년 우의정이 되어 정여립(鄭汝立)의 모반 후 그 잔당에 대한 옥사를 다스리고는 위관(委官)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서인 정철(鄭澈)의 사주를 받은 대간으로부터 정여립의 구촌친(九寸親)이므로 공정한 처리를 할 수 없다는 탄핵을 받아, 위관을 사퇴하고 이어서 우의정도 사퇴했으며, 정철이 위관을 대신하였다.

그 뒤 역가문서(逆家文書) 가운데에 그가 들어 있다는 것을 구실로 정철 등으로부터 계속 정여립의 일파로 모함을 받아 남해에 유배되었다가 투옥되었다. 사사(賜死)의 하교가 있었으나 감형되어 갑산에 유배, 그 곳에서 죽었다. 1599년에 복관되었다. 문경의 소양사(瀟陽祠)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용주유고(龍洲遺稿)』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