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삼가(三嘉). 자는 곤보(崑寶), 호는 경재(耕齋). 아버지는 증승정원도승지 정사중(鄭師仲)이며, 어머니는 임급(任伋)의 딸이다.
길재(吉再)와 권우(權遇)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박팽년(朴彭年)·유성원(柳誠源)·정창(鄭昌)·이석형(李石亨)·정준(鄭悛) 등과 교우가 두터웠다. 세종 때에 효행으로 천거되어 봉직랑행하양현감(奉直郎行河陽縣監)에 임용되었으나 곧 향리에 은거하였다.
성품이 지효(至孝)하여 편모를 극진히 봉양하였고, 사후에는 장례와 시묘는 물론 종신토록 상식(上食)을 올렸다. 사당 옆에 홀연히 흰 대추나무 일곱 그루가 돋아 한자 남짓 자랐는데, 시인(時人)이 효심에 감응하여서 난 것이라고 하였다.
뒤에 효행의 표본으로 『삼강행실』과 『동국여지승람』에 등재되었다. 1516년(중종 11) 정려가 세워지고, 1689년(숙종 15)에는 사림들이 평천(平川)에 사(祠)를 세우고 제향하였으며, 1701년에 좌승지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경재문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