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옥량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하양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곤보(崑甫)
경재(耕齋)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395년(태조 4)
사망 연도
1447년(세종 29)
본관
삼가(三嘉)
주요 관직
하양현감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전기에, 하양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삼가(三嘉). 자는 곤보(崑寶), 호는 경재(耕齋). 아버지는 증승정원도승지 정사중(鄭師仲)이며, 어머니는 임급(任伋)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길재(吉再)와 권우(權遇)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박팽년(朴彭年)·유성원(柳誠源)·정창(鄭昌)·이석형(李石亨)·정준(鄭悛) 등과 교우가 두터웠다. 세종 때에 효행으로 천거되어 봉직랑행하양현감(奉直郎行河陽縣監)에 임용되었으나 곧 향리에 은거하였다.

성품이 지효(至孝)하여 편모를 극진히 봉양하였고, 사후에는 장례와 시묘는 물론 종신토록 상식(上食)을 올렸다. 사당 옆에 홀연히 흰 대추나무 일곱 그루가 돋아 한자 남짓 자랐는데, 시인(時人)이 효심에 감응하여서 난 것이라고 하였다.

뒤에 효행의 표본으로 『삼강행실』과 『동국여지승람』에 등재되었다. 1516년(중종 11) 정려가 세워지고, 1689년(숙종 15)에는 사림들이 평천(平川)에 사(祠)를 세우고 제향하였으며, 1701년에 좌승지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경재문집』이 있다.

참고문헌

『삼강행실(三綱行實)』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덕천급문집(德川及文集)』
『초계정씨세보(草溪鄭氏世稿)』
『대동야승(大東野乘)』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