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자중(子中), 호는 문봉(文峯). 정목번(鄭穆蕃)의 아들이며,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52년(명종 7) 생원이 되고, 1558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진보·예안의 현감을 거쳐 영천군수 등을 지냈다.
그 뒤 설서·정언·직강·지평·이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1570년(선조 3) 사가독서(賜暇讀書)하고 이듬해 사인으로 춘추관편수관이 되어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한 뒤 대사간·승지 등을 지냈다.
시부(詩賦)에 뛰어나 명망이 높았으며, 또한 성리학에 있어서도 사문(師門)의 정통성을 이어받아 주자학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발전시켜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사상의 핵심으로 함으로써 이가 발하여 기가 이에 따르는 것이 사단(四端)이며, 기가 발하여 이가 이것을 타는 것이 칠정(七情)이라 주장한 퇴계설을 추종, 발전시켰다.
관직을 물러난 뒤 『한중록(閑中錄)』·『관동록(關東錄)』·『송조명현록(宋朝名賢錄)』 등을 저술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안동의 백록리사(栢麓里祠)에 봉안되어 있다. 저서로는 『문봉집(文峯集)』, 편서로는 『명현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