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시호
헌민(獻愍)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461년(세조 7)
본관
해주(海州)
주요 관직
형조판서
정의
조선 전기에,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해주(海州). 아버지는 참판 정충경(鄭忠敬)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50년(세종 32)에 문종의 딸 경혜공주(敬惠公主)와 혼인한 뒤 영양위(寧陽尉)에 봉하여지고, 단종 초기에 형조판서가 되어 단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1455년(단종 3)에 금성대군 유(錦城大君瑜)의 사건에 관련되어 영월에 유배되었다. 이 해에 수양대군이 즉위하였는데, 문종의 유일한 사위라 하여 경기도 양근(楊根)에 양이(量移)되었으나, 1456년(세조 2) 사육신사건으로 죄가 가중되어 다시 수원·통진을 거쳐 광주(光州)에 안치되었다.

이 후, 1461년 승려 성탄(性坦) 등과 반역을 도모하였다 하여 능지처참되었다. 그와 함께 유배되어 관비(官婢)가 된 경혜공주가 적소에서 아들을 낳자, 세조비 정희왕후(貞熹王后)가 친히 양육하고 세조가 미수(眉壽)라 이름하였다.

영조 때 신원(伸寃: 억울하게 입은 죄를 풀어줌.)되었고, 강원도 영월장릉(莊陵) 경내 장판옥(藏版屋)과 공주동학사(東鶴寺)숙모전(肅慕殿)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헌민(獻愍)이다.

참고문헌

『세조실록(世祖實錄)』
『영조실록(英祖實錄)』
『정조실록(正祖實錄)』
『장릉지(莊陵誌)』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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