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세자시강원보덕, 강릉대도호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후 인조가 즉위하기까지 20여 년에 걸쳐 아버지에 대한 선조의 혐오와 동인과 대북의 박해 및 성혼을 극력으로 배척한 정인홍(鄭仁弘)의 집요한 음모 등으로 사환(仕宦)이 금지당함은 물론, 생명이 위협당하는 고통을 겪었다.
1623년(인조 1) 3월 인조의 즉위와 서인의 집권으로 성균관직강으로 복직되고, 이듬해 3월 사간원사간 겸 춘추관편수관(司諫院司諫兼春秋館編修官)을 거쳐 곧 사도시정(司䆃寺正)에 개수되었다.
1624년 장악원정(掌樂院正)으로 재직할 때 동생 홍문관교리 궁명(弓溟)과 함께 아버지가 죄를 입게 된 것은 1589년 정여립옥사(鄭汝立獄事)를 다스리면서 동인을 배척했기 때문이니 관작을 복구해 달라고 간청, 아버지의 관작을 복구시켰다. 그리고 그 해 7월 사헌부집의·사간원사간·사복시정을 역임하였다.
1625년 의정부검상·의정부사인·홍문관교리·세자시강원보덕을 거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승진하면서 강릉대도호부사로 파견되었다가 임지에서 죽었다. 병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저작으로 『송강유고(松江遺稿)』의 부록에 실려 있는 『백씨유고(伯氏遺稿)』가 있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송자대전(宋子大全)』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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