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하

  • 과학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전기 내약방의원, 전의감정 등을 역임한 의관.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1420년(세종 2)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내약방의원|전의감정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쾌정 (한독의약박물관)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전기 내약방의원, 전의감정 등을 역임한 의관.

생애 및 활동사항

태종·세종 때에 왕실의 의약을 관장하던 내약방(內藥房)의 의원이었다.

1418년(태종 18) 세자로 책봉되었다가 폐위가 되어 경기도 광주에 머무르고 있던 양녕대군(讓寧大君) 이제(李禔)의 병고를 돌보라는 태종의 명을 받고 의원 한용진(韓用珍)과 함께 서로 교대로 가서 약을 지어 병을 치료하였다. 이때 태종은 소합원(蘇合元)·청심원(淸心元)·양비원(養脾元)·목향원(木香元) 등의 약과 소주 및 약주를 함께 하사하였다.

1420년(세종 2) 명나라에 갔던 사신 남휘(南暉)가 돌아오던 도중 통주(通州)의 노하역(潞河驛)에서 병을 얻어 고령역(高嶺驛)에 이르러서야 겨우 쾌유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왕명을 받들어 의주까지 가서 맞이해왔다. 뒤이어 곧 정3품 당하관인 전의감정(典醫監正)에 임명되었다.

의술이 능하여 태종의 병환에 시의(侍醫) 원학(元鶴)과 함께 윤번으로 숙직하면서 돌보도록 어명을 받았다. 원학이 그를 부르러 갔으나 그는 태종이 워낙 강직하고 총명함을 두려워하여 가까이 모시기를 꺼려 믿을만한 경험이 없다는 구실로 나오지를 않았다. 그래서 또 다시 원학을 시켜 그를 부르러 보냈으나 끝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즉시 의금부로 불러 신문하니, 그는 상감께서 사리에 환하고 밝아 만약 방술에 관하여 질문하면 어떻게 대답할지 몰라 가지 않았다 하므로 대역죄로 다스려 참수되었다.

참고문헌

  • - 『태종실록(太宗實錄)』

  • - 『세종실록(世宗實錄)』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