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검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강화부유수, 부제학,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자상(子尙)
  • 철재(澈齋)
인물/전통 인물
  • 본관동래(東萊)
  • 사망 연도1784년(정조 8)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이조참판
  • 출생 연도1737년(영조 13)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반윤홍 (조선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강화부유수, 부제학,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자상(子尙), 호는 철재(澈齋). 영의정 정광필(鄭光弼)의 후손이며, 정재해(鄭載海)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시선(鄭是先)이고, 아버지는 정석범(鄭錫範)이며, 어머니는 이정룡(李挺龍)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71년(영조 47) 식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2년 뒤 세마(洗馬)에 보직, 정조가 세손으로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에 있을 때부터 알게 되었다. 1776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이듬해 정언을 거쳐, 의주부윤·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1781년(정조 5) 규장각직제학에 등용되어 『국조보감(國朝寶鑑)』 찬집당상(纂輯堂上)을 겸하였으며, 경연(經筵)에서의 강화내용을 기록하여 규장각에 보관할 것을 연명으로 차자를 올려 이를 성사시켰다. 이어 대사성·부빈객(副賓客)·강화부유수 등을 역임하였다.

1784년에는 부제학을 거쳐 이조참판에 올랐다. 경술(經術)과 사장(詞章)에 능하고 성품이 온아·청통(淸通)하여 강좌명사(江左名士)의 풍이 있었다. 심염조(沈念祖)와 함께 내각에 뽑혀 정조를 계옥(啓沃)하여 많은 지우(知遇)를 입었다.

문형(文衡)에 추천되었으나 부임하기 전에 죽으니 사류들이 애석하게 여겼다. 글씨를 잘 써서 건원릉재실(健元陵齋室)의 벽시게판(壁詩揭板) 22매(枚)를 남겼다.

참고문헌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사마방목(司馬榜目)』

  •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 『속조야집록(續朝野輯錄)』

  •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