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호조정랑, 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세조가 그의 재주를 아껴 몇번이나 불렀으나 끝내 나아가지 않았다. 양어머니 정씨(河東鄭氏)를 그곳에 모셔 지성으로 봉양하니 사람들이 그 집을 가리켜 충효의 가문이라 하였다. 단종이 비명에 죽자 항상 영월 쪽을 향하여 앉아서 옛 임금을 사모하였다.
1459년(세조 5)에 김시습(金時習)과 함께, 단종과 단종을 위하다가 죽은 충신들의 넋을 동학사(東鶴寺)숙모전(肅慕殿)에 초혼하여 제향하였다. 산채와 어류를 캐고 잡아 숙모전의 제향을 받들면서 「채미가(採薇歌)」와 「자규사(子規詞)」를 지어 읊기도 하였다.
뒷날 정조 때 판서에 증직되고, 충신·효자의 정려가 내려졌다. 장릉(莊陵) 충신단과 동학사 숙모전 서무(西廡)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 『정조실록(正祖實錄)』
- 『포옹실기(逋翁實記)』
- 『진주정씨족보(晉州鄭氏族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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