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산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호조정랑, 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언평(彦平)
  • 포신(逋臣)
인물/전통 인물
  • 본관진주(晉州)
  • 사망 연도1469년(예종 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호조정랑
  • 출생 연도1423년(세종 5)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재범 (전 인간문화재,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포옹실기 미디어 정보

포옹실기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전기에, 호조정랑, 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언평(彦平), 호는 포신(逋臣). 아버지는 목사 정효안(鄭孝安)이며, 어머니는 소감(少監) 유찬(柳瓚)의 딸이다. 종숙인 우의정 정분(鄭苯)에게 입양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학문이 깊어 이름을 떨치더니 1445년(세종 27) 사마시에 합격하고, 그 뒤 여러 관직을 거쳐 1450년에 호조정랑이 되었다. 그 뒤 현감으로 나갔다가 1453년(단종 1)에 수양대군(首陽大君)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황보 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와 그의 양아버지인 정분을 죽이자 벼슬을 버리고 공주 동혈(銅岤)에 들어갔다.

세조가 그의 재주를 아껴 몇번이나 불렀으나 끝내 나아가지 않았다. 양어머니 정씨(河東鄭氏)를 그곳에 모셔 지성으로 봉양하니 사람들이 그 집을 가리켜 충효의 가문이라 하였다. 단종이 비명에 죽자 항상 영월 쪽을 향하여 앉아서 옛 임금을 사모하였다.

1459년(세조 5)에 김시습(金時習)과 함께, 단종과 단종을 위하다가 죽은 충신들의 넋을 동학사(東鶴寺)숙모전(肅慕殿)에 초혼하여 제향하였다. 산채와 어류를 캐고 잡아 숙모전의 제향을 받들면서 「채미가(採薇歌)」와 「자규사(子規詞)」를 지어 읊기도 하였다.

뒷날 정조 때 판서에 증직되고, 충신·효자의 정려가 내려졌다. 장릉(莊陵) 충신단과 동학사 숙모전 서무(西廡)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포옹실기(逋翁實記)』

  • - 『진주정씨족보(晉州鄭氏族譜)』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