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이 39세로 강녕전(康寧殿)에서 죽을 때 내의를 역임하였으므로 조경지(曺敬智)·전인귀(全仁貴)·김길호(金吉浩)·조흥주(趙興周)·송첨(宋瞻)과 함께 곤장 90대의 체벌을 받고 관직을 박탈당하였으나 곧 내의원(內醫院)에 벼슬하였다.
1453년(단종 1) 일본의 승려로서 사신으로 온 희익(喜益)이 침구술과 의약처방에 정통하므로 같은 내의로 있던 김길호·김지(金智)와 함께 왕명을 받아 일시 그의 의술을 습득하였다.
세조 즉위에 참여한 공으로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의 1등공신 82명 중의 1명으로 오위(五衛)의 정4품 호군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1459년(세조 5)에는 명나라에서 온 사신 백홍(白洪)의 질병을 고쳐주었으며, 평안도도절제사 구치관(具致寬)의 질병을 왕명으로 치료한 바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