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초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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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제도
조선 후기에 설치한 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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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설치한 군영.
내용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이후 병조판서 이시백(李時白)의 건의에 의해 병조 소속의 기병(騎兵)·보병(步兵)을 정초(精抄)해 이를 정초군이라 하고 번상(番上) 숙위하도록 하였다. 초기의 정초군은 그 수가 1,180명으로 1번에 148명이 교대로 번상해 왕궁과 동궁(東宮)의 숙위를 담당하였다.

그러나 초기의 정초군은 그 귀속처(歸屬處)가 애매해 간선(揀選)은 병조가 책임지고 조총(鳥銃)교습이나 약환(藥丸) 등의 공급은 훈련도감(訓鍊都監)이 관장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는 훈련도감의 훈련별대(訓鍊別隊)와 대비되는 군대로, 사실상 인조반정 이후 당인(黨人)들의 세력확장 내지는 정치적 기반을 위한 역관계(力關係)와 연관되어 설치된 병종이었다.

정초군은 처음 입직하는 위장(衛將)에 의해 통솔되었다. 그러나 1648년 그 책임자를 병조판서로 하고 파총(把摠)·초관(哨官) 등에 의해 통솔되면서 훈련도감에서 분리되고 건양문(建陽門) 밖에서 입직하였다.

1663년(현종 4) 병조판서 김좌명(金佐明)에 의해 당번수를 148명에서 200명으로 늘렸다. 그리고 부족한 수는 번상해 온 기병 중에서 젊고 건장한 자를 뽑아 100명은 진선문(進善門) 밖 북월랑(北月廊)에서, 100명은 건양문 밖 구영(舊營)에서 입직하도록 하였다.

그러다가 1668년에 가서 병조판서 홍중보(洪重普)에 의해 처음으로 정초청으로 승격 발족하고 병영을 구 병조(舊兵曹)에 두었다. 당시 병조의 기병 8번호(八番戶) 1만9391명을 정초청으로 옮겨 8번 40초(哨)로 만들었는데, 1초는 111명으로 40초는 4,440명이었다. 이들 번상하는 각 군에게는 자장보(資裝保) 1명씩을 갖추게 하고 나머지 1만511명에게는 미(米)·포(布)를 거두어 운영 경비에 충당하였다.

이와 같은 정초군은 도제조(都提調)의 자문 아래 병조판서가 구관(句管)하게 되었다. 1673년 병조판서 김만기(金萬基)에 의해 자장보 가운데에서 다시 1,220명을 감축하고 도합 50초로 하여 10번으로 나누어 그 번차(番次)를 완화하였다.

이와 같이 편제된 정초군은 병조판서의 지휘 아래 두었다. 그러나 참판 이하의 병조 관리들은 이에 간여하지 못하도록 하고 별장(別將)·낭청(郎廳) 등을 별도로 두어 관장하였다. 이들은 700여의 금군(禁軍)과 짝지어 좌대(左隊)·우대(右隊)로 나누어 습조(習操)했으며, 행행(行幸) 수가(隨駕)의 임무도 띠어 금군의 구실도 담당하였다.

정초청의 설치가 표면적으로는 병조판서의 수하병(手下兵) 확보, 상번 기병의 요역화를 지양하고 숙위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근본 목적은 당시 서인 정권의 세력 강화 및 호(戶)·보(保) 조직에 의한 국가 재정의 빈곤을 타개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군사 능력도 향상시킬 수 있다는데 있는 것 같다. 1682년(숙종 8) 훈련별대와 함께 호·보로 조직되었던 금위영에 통합되었다.

참고문헌

『인조실록(仁祖實錄)』
『현종실록(顯宗實錄)』
『숙종실록(肅宗實錄)』
『만기요람(萬機要覽)』
『대전회통(大典會通)』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금위영등록(禁衛營謄錄)』
『금위영사례(禁衛營事例)』
『조선시대군제(軍制)연구』(차문섭, 단국대학교출판부, 1973)
『한국군제사-(韓國軍制史)近世朝鮮後期篇-』(육군본부, 한국군사연구실,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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