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중칙(仲則), 호는 우천(愚川) 또는 와운옹(臥雲翁). 안동 출생. 아버지는 예조참판에 증직된 정사신(鄭士信)이며, 어머니는 영춘이씨(永春李氏)로 관찰사 이광준(李光俊)의 딸이다.
광해군의 폭정을 비관하여 과거 응시를 포기하고 글만을 읽다가, 1627년(인조 5) 진사가 되고 이어서 참봉에 올랐다. 1636년 병자호란 직전에 「논시사언죄(論時事言罪)」를 지어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였는데, 경상좌도의 병영 이전 등 7개항의 시폐를 개혁할 것을 요구하고, 왕도정치를 시행해야만 나라가 평안하고 백성도 안락을 누릴 수 있다고 주청하였다.
청나라와 강화가 이루어지자 대명절의를 부르짖고 향리로 돌아가 우천정(愚川亭)을 지어서 후진 육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저서로는 『우천문집(愚川文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