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자중(子中). 정한(鄭漢)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광연(鄭光演)이고, 아버지는 정집(鄭濈)이며, 어머니는 오명석(吳命錫)의 딸이다. 용궁현감 정식(鄭湜)에게 입양되었다.
1715년(숙종 41) 식년문과 갑과에 탐화랑(探花郎:세번째로 급제한 사람)으로 급제하여 곧 종묘직장(宗廟直長)에 제수되고, 시강원의 설서를 거쳐 정언·지평·헌납에 올랐다. 경종 즉위 이후 왕세제(뒤의 영조) 책봉문제를 반대한 김일경(金一鏡) 일파를 소론(疏論)하다가 도리어 노론 4대신과 함께 신임사화 때 파직되었다.
영조가 즉위하면서 다시 기용되어 헌납·사간이 되었다가, 1727년(영조 3) 정미환국으로 소론이 다시 등장하자 성주 임지에서 삭직되어 구금되었고, 1729년 광주(光州)로 찬배(竄配)되었다가 2년 뒤 풀려나 향리인 평창으로 돌아갔다.
그 뒤 승지를 여러 번 지내고, 동래접위사(東萊接慰使) 및 돈녕부도정을 지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며, 몸가짐이 단아하고 정중하였다. 특히, 벼슬길에 있는 동안 총명한 지혜를 발휘하여, 왕에게 언로를 넓히고 직언을 구할 것을 주장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