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 후기에, 전리총랑, 좌사간대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당시의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고자 상소하였다가 도리어 파면 당하였다. 이때에 어떤 이가 정포가 원나라로 망명하려 한다는 참언을 하여 끝내 울주(蔚州)로 유배당하였다. 유배 중에도 오히려 태연자약하여 활달한 장부의 기질을 잊지 않고 풍류생활을 즐겼다.
정포는 유배지에서 풀리자 다시 출세의 의지를 가지고 원나라에 건너갔다. 원나라 승상인 별가불화(別哥不花, 別哥普化)가 그를 한번 보고 매우 호감을 가지게 되어 원나라 황제에게 추천하였다. 그 뒤에 얼마 안 되어 37세의 나이로 죽었다.
활동사항
이색(李穡)의 「설곡시고서(雪谷詩藁序)」에서 정포의 시를 “맑아도 고고(苦孤)하지 않고, 화려해도 음탕하지 않아, 사기(辭氣)가 우아하고 심원하여 결코 저속한 글자를 하나도 쓰지 않았다” 하여, 높은 수준의 시경(詩境)을 성취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일생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인생체험을 품격 있게 형상화하고 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익재난고(益齋亂藁)』
- 『목은집(牧隱集)』
- 『동문선(東文選)』
주석
-
주1
: 지금의 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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