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의 ()

상화집 / 정호의
상화집 / 정호의
유교
인물
조선 후기에, 『상화집』 등을 저술하였으며, 임고서원의 원장에 추대되어 풍속을 순화시키고자 힘쓴 학자.
이칭
자방(子方)
상화(常華), 명계(明溪)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02년(선조 35)
사망 연도
1655년(효종 6)
본관
영일(迎日)
출생지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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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상화집』 등을 저술하였으며, 임고서원의 원장에 추대되어 풍속을 순화시키고자 힘쓴 학자.
개설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자방(子方), 호는 상화(常華)·명계(明溪). 세거지는 영천(永川). 아버지는 내금위장(內禁衛將) 정수번(鄭守藩)이고, 어머니는 창녕조씨(昌寧曺氏) 생원 조희익(曺希益)의 딸이며, 전삼성(全三省)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약관에 벌써 경사(經史)·백가(百家)를 두루 섭렵하고 이어 저술에도 많은 힘을 기울여 문장 솜씨가 매우 뛰어났다. 초년에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응시해 보았으나, 중년 이후로는 출세와 인연을 끊고 마을 앞 시냇가에 ‘정정정(亭亭亭)’이라는 정자를 지어 꽃 가꾸기와 책 읽기, 그리고 시주(詩酒)·조어(釣漁)로써 낙천적인 생활을 하였다.

‘명계’라는 호도 이 때 지은 자호이다. 1636(인조 14) 병자호란 때는 형 정호인(鄭好仁)과 함께 의병을 모아 조령(鳥嶺)을 넘었다가 강화의 소식을 듣고 돌아왔으며, 한 때는 임고서원(臨皐書院)의 원장(院長)에 추대되어 매월 삭강(朔講: 초하루에 실시하는 강의)으로써 한 지역의 문풍을 진작하고 풍속을 순화시켰다. 저서로는 『상화집(常華集)』 2권이 있다.

참고문헌

『상화집(常華集)』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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