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의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상화집』 등을 저술하였으며, 임고서원의 원장에 추대되어 풍속을 순화시키고자 힘쓴 학자.
이칭
  • 명계(明溪), 상화(常華)
  • 자방(子方)
인물/전통 인물
  • 본관영일(迎日)
  • 사망 연도1655년(효종 6)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602년(선조 35)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능하 (단국대학교동양학연구소,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상화집 / 정호의 미디어 정보

상화집 / 정호의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상화집』 등을 저술하였으며, 임고서원의 원장에 추대되어 풍속을 순화시키고자 힘쓴 학자.

개설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자방(子方), 호는 상화(常華)·명계(明溪). 세거지는 영천(永川). 아버지는 내금위장(內禁衛將) 정수번(鄭守藩)이고, 어머니는 창녕조씨(昌寧曺氏) 생원 조희익(曺希益)의 딸이며, 전삼성(全三省)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약관에 벌써 경사(經史)·백가(百家)를 두루 섭렵하고 이어 저술에도 많은 힘을 기울여 문장 솜씨가 매우 뛰어났다. 초년에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응시해 보았으나, 중년 이후로는 출세와 인연을 끊고 마을 앞 시냇가에 ‘정정정(亭亭亭)’이라는 정자를 지어 꽃 가꾸기와 책 읽기, 그리고 시주(詩酒)·조어(釣漁)로써 낙천적인 생활을 하였다.

‘명계’라는 호도 이 때 지은 자호이다. 1636(인조 14) 병자호란 때는 형 정호인(鄭好仁)과 함께 의병을 모아 조령(鳥嶺)을 넘었다가 강화의 소식을 듣고 돌아왔으며, 한 때는 임고서원(臨皐書院)의 원장(院長)에 추대되어 매월 삭강(朔講: 초하루에 실시하는 강의)으로써 한 지역의 문풍을 진작하고 풍속을 순화시켰다. 저서로는 『상화집(常華集)』 2권이 있다.

참고문헌

  • - 『상화집(常華集)』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