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위전(祭位田)이라고도 한다.『고려사』에 의하면 고려시대에도 원구(圓丘) 이하 여러 신위를 대사(大祀)·중사(中祀)·소사(小祀)로 구분, 제향하고 있었으나 제전을 설정한 기록은 없다.
조선시대에는 개국초부터 주자학적인 예(禮)의 규정에 따라 국가적인 사전을 정비하고, 1392년(태조 1) 8월 고려 시조 이하 8왕을 경기 마전현(麻田縣)에 입묘(立廟) 치제하게 하고 제전을 지급하였다. 또한, 1431년(세종 13)에는 백제·신라·고구려 시조를 위하여 충청·경상·평안도에 각각 2결(結)의 제전을 지급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3월 사전에 등재된 각 도의 산천·성황(城隍)의 제전으로 중사 2결, 소사 1결50부(負)씩 지급하는 한편, 평양의 단군·기자를 중사로 하여 각 3결씩 지급하고 마전현의 고려 시조 이하 현종·원종·공민왕에 대해서도 각각 3결씩의 제전을 지급하였다.
그러나 1445년 국용전제(國用田制)의 시행에 따라 고려 시조 이하 4왕에 대한 마전현 소재의 숭의전(崇義殿) 제전 12결만 남기고, 전주경기전(慶基殿)의 제전 9결을 비롯하여 사직(社稷)·악(嶽)·해(海)·산천·성황 등 모든 제전을 혁파하고 그 제수는 국고에서 지급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숭의전 제전은 각자수세전(各自收稅田)으로 국가에 납입될 전세(田稅)를 숭의전에서 거두어 제수로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