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평보(平甫). 호는 퇴우당(退憂堂). 조상림(曺上林)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명수(曺命壽)이고, 아버지는 조순(曺珣)이며, 어머니는 권회(權恢)의 딸이다.
1501년(연산군 7)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글을 잘 짓고 왕의 뜻을 잘 살펴서, 지제교·호조참의·동부승지에 이르렀다. 중종반정이 일어나자 수채구멍으로 도망하여 공신에 참여하였다. 이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수구군(水口君)’이라고 조롱당하였다고 한다.
그는 사사로운 감정을 가지고 겉으로는 공론을 빙자하여 남을 중상하기를 잘하여, 사림들이 그를 제거하지 못한 것을 분하게 여겼다. 1514년(중종 9)에 장죄(贓罪)를 범하여 직첩(職帖)을 삭탈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