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근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강원도관찰사, 첨지중추원사, 전주부윤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치규(穉圭)
인물/전통 인물
  • 본관양주(楊州)
  • 사망 연도1475년(성종6)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형조참의|전주부윤
  • 출생 연도1417년(태종 17)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한충희 (계명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전기에, 강원도관찰사, 첨지중추원사, 전주부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치규(穉圭). 조인필(趙仁弼)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의(趙誼)이고, 아버지는 영중추원사(領中樞院事) 조말생(趙末生)이며, 어머니는 신하(申夏)의 딸이다. 이사원(李師元)의 사위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38년(세종 20) 진사가 되고, 1441년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에 제수되었다. 이어 집현전정자·저작(著作)·경연사경(經筵司經)·집현전박사 등을 역임하였다. 1449년 아버지의 3년상을 마치고 성균관주부에 서용되었다.

곧 승문원부교리를 거쳐 1450년(문종 즉위년) 8월 사은사 황보 인(皇甫仁)의 서장관이 되어 사헌부감찰을 겸대하고 명나라에 다녀왔다. 1451년 사간원정언·지제교가 되어 춘추관기사관을 겸하고, 이 후 항상 지제교직을 띠고 교명(敎命)을 작성하는 데 참여하였다.

그 뒤 성균관사예·집현전응교가 되어 경연검토관부지승문원사(經筵檢討官副知承文院事)를 겸하고 『문종실록』 편찬에 기주관(記注官)으로 참여하였다. 1455년(세조 1) 세조의 잠저시에 신뢰받은 문신으로 평가되어 원종공신 2등에 책록되면서 가자되었다.

이 후 장령(掌令)·한성부소윤·세자시강원필선·좌보덕·판서운관사(判書雲觀事)·판종부시사(判宗簿寺事)·판승문원사(判承文院事)를 역임하였다.

1464년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 1465년 예조참의, 1466년 하정사(賀正使)로서 명나라에 다녀와 형조참의가 되었고, 1467년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시 다녀왔다. 1468년 강원도관찰사로 구황에 공로를 세우고, 그 뒤 첨지중추원사·전주부윤 등을 지냈다. 문장이 뛰어나고 해서에 능하여 외교문서·전적(典籍)의 작성에 공헌이 컸다.

참고문헌

  • - 『세종실록(世宗實錄)』

  • - 『문종실록(文宗實錄)』

  • - 『세조실록(世祖實錄)』

  • - 『성종실록(成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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