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치규(穉圭). 조인필(趙仁弼)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의(趙誼)이고, 아버지는 영중추원사(領中樞院事) 조말생(趙末生)이며, 어머니는 신하(申夏)의 딸이다. 이사원(李師元)의 사위이다.
1438년(세종 20) 진사가 되고, 1441년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에 제수되었다. 이어 집현전정자·저작(著作)·경연사경(經筵司經)·집현전박사 등을 역임하였다. 1449년 아버지의 3년상을 마치고 성균관주부에 서용되었다.
곧 승문원부교리를 거쳐 1450년(문종 즉위년) 8월 사은사 황보 인(皇甫仁)의 서장관이 되어 사헌부감찰을 겸대하고 명나라에 다녀왔다. 1451년 사간원정언·지제교가 되어 춘추관기사관을 겸하고, 이 후 항상 지제교직을 띠고 교명(敎命)을 작성하는 데 참여하였다.
그 뒤 성균관사예·집현전응교가 되어 경연검토관부지승문원사(經筵檢討官副知承文院事)를 겸하고 『문종실록』 편찬에 기주관(記注官)으로 참여하였다. 1455년(세조 1) 세조의 잠저시에 신뢰받은 문신으로 평가되어 원종공신 2등에 책록되면서 가자되었다.
이 후 장령(掌令)·한성부소윤·세자시강원필선·좌보덕·판서운관사(判書雲觀事)·판종부시사(判宗簿寺事)·판승문원사(判承文院事)를 역임하였다.
1464년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 1465년 예조참의, 1466년 하정사(賀正使)로서 명나라에 다녀와 형조참의가 되었고, 1467년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시 다녀왔다. 1468년 강원도관찰사로 구황에 공로를 세우고, 그 뒤 첨지중추원사·전주부윤 등을 지냈다. 문장이 뛰어나고 해서에 능하여 외교문서·전적(典籍)의 작성에 공헌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