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형조참판, 형조판서, 한성판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94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기주관으로 관직생활을 시작하면서 한림회권(翰林會圈 : 예문관검열을 뽑기 위해 예문관 전임 관원들이 피선자에게 낙점을 찍음)에 뽑히고 규장각 초계문신에 선발되는 등 정조의 특별한 배려를 받았다.
이 후 부교리·정언·지평 및 이조·병조 낭관을 거쳤고, 초계시(抄啓試)에서 세번 수석을 하여 4품에 오른 뒤 부안현령이 되었다. 1802년(순조 2) 승정원승지·대사간·이조참의·형조참의·자산부사가 되었고, 1809년 이후 이조·호조·예조·병조·형조의 참판을 거쳤으며, 1818년에 부사로서 연경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다음해 대사성을 거쳐 강화유수가 되어서는 세금감면·향약실시에 노력하였고, 1821년에 형조판서 겸 예문관제학이 되었으며, 동지정사(冬至正使)로서 다시 연경에 다녀왔다.
다음해 한성판윤 겸 지경연사(漢城判尹兼知經筵事)로 재직중 사망하였다. 성격이 밝으면서 부드럽고 깊이가 있다는 평을 받았다. 독서에 전념하였고 안분순명(安分順命)을 규범으로 삼아 생활하였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참고문헌
- 『정조실록(正祖實錄)』
- 『순조실록(純祖實錄)』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국조방목(國朝榜目)』
- 『경산집(經山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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