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선여(善汝), 호는 둔재(遯齋). 평택(平澤)에서 출생. 어버지는 봉상시 정(奉常寺正) 조사충(趙思忠)이며, 어머니는 의령남씨(宜寧南氏) 통덕랑 남정우(南鼎禹)의 딸이다.
1786년(정조 10) 진사시에 합격하고, 1791년 평택현감(平澤縣監) 이승훈(李承薰)이 문묘에 참배하지 않고 천주교를 신봉하자 권위(權瑋)·정언택(鄭彦宅) 등과 더불어 이를 사문난적(斯文亂賊: 교리에 어긋나는 언동으로 유교를 어지럽히는 사람)으로 몰아 성토하는 내용의 통문(通文)을 각 처 유림과 태학(太學)에 발송했다.
그러나 이승훈이 이 소식을 듣고 그 이듬해 안핵사(按覈使) 김희채(金熙采)를 비롯하여 이수(李璲)·이정길(李貞吉) 등과 모의, 조상본을 무함(誣陷: 없는 사실을 꾸며 남을 함정에 빠지게 함)하여, 거제도(巨濟島)에 유배되었다가 1795년(정조 19)에 풀려났다. 시에 능했으며, 포의사(褒義祀)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둔재유고(遯齋遺稿)』 2권 1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