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겸 발행인은 이돈화(李敦化, 1호∼2권 5월호)·이성환(李晟煥, 2권 6월호∼5권 7호)으로서 발행처는 조선농민사였다. 판형은 A5판으로 값은 15전이었다.
일제의 꾸준한 압박을 받으면서도 계속 발행하여 많은 농민대중으로부터 호응을 받았다. 처음에는 천도교 산하에 있다가 천도교와는 인연을 끊고 말았다.
잡지 창간사에서 밝혔듯이 “반만년 동안 짓밟히고 주물리고 속고 빨리어서 항상 큰 불안과 공포와 빈천에 결박되어 살아오던 전조선인구의 그 9할이나 되는 농민대중의 인격적 해방을 위하여 급전직하로 막달음질하여 황폐·파멸의 맨 밑바닥 구렁텅이에로 쏠려들어가는 조선 농촌의 그 참담한 경제적 현상을 구제하기 위하여 더욱 이 중대한 사명을 다하는 데 그 주춧돌이 되며, 또 기둥이 되는 전조선 절대다수의 농민대중의 지식적 각성을 재촉하기 위하여……” 발간한 것이다.
그러나 내부분규로 말미암아 천도교측에 반대하는 비교인측이 임시대회를 열어 전조선농민사로 개칭하고, 1930년 5월에 『농민(農民)』으로 개칭하여 새로운 잡지로 발행하다가 38호로 종간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