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발행인 겸 주간은 오천석(吳天錫)으로 한성도서주식회사 출판부에서 발행하였다.
이 잡지는 학생, 특히 중학생을 위한 잡지로서는 우리나라의 효시가 된다. 판형은 A5판 100면 내외였는데, 내용은 학과의 해설이나 교과의 보충보다 학생들의 교양에 중점을 두었다.
창간호에 실린 「천직론(天職論)」(오천석)·「내 힘」(장도빈)·「문학이야기」(김억)·「음악이야기」(박태원)·「미술에 대하여」(김환)·「과학이야기」(이종준)·「시성 타고르에 대하여」(김유방)·「운동이야기」(이추강)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뒤 ‘조선학생회(朝鮮學生會)’의 기관지로 되어, 편집 겸 발행인도 이시웅(李時雄)으로 변경되었는데, 3회 발간하다가 1924년 6월 통권 22호로 종간되고 말았다.
당시 조선학생회라는 것은 평양숭실전문학교·수원고등농림학교·경성의학전문학교·보성전문학교·연희전문학교·경성상공학교·경성고등상업학교·경성치과전문학교 등의 학생으로 구성된 단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