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문인협회가 몇몇 단체와 통합되면서 강화, 발전된 친일단체이다.
본래 1939년 10월 29일 부민관에서 250여 명의 문인이 모여 결성하였다. 발기인에는 이광수 · 김동환 · 김억 · 정인섭 · 유진오 · 이태준 · 최재서 · 박태원 · 김문집 등이 참여하였다.
회장에 추대된 이광수는 취임사에서 “이번 이 협회의 창립은 새로운 국민문학의 건설과 내선일체의 구현에 있다. 인류는 유사 이래 국민생활을 떠나 생활한 일이 없고, 문학도 국민생활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반도문단의 새로운 건설은 내선일체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조선인측 간사에는 김동환 · 정인섭 · 주요한 · 이기영 · 박영희 · 김문집이 선임되었다. 이 단체는 1939년 11월 8일 첫 사업으로 회원들의 자작 위문문을 넣은 위문대 모집과 문예의 밤을 개최하는 데 합의하였다.
1939년 12월 21일 부민관 대강당에서 문학인의 밤 행사를 열었다. 또 1940년 2월 11일 이른바 기원절에 즈음하여 평양에서 문예대강연회를 개최하였다. 이와 같은 행사에는 일본인 문학인들도 다수 참석하였다.
조선문인협회는 전쟁 말기가 되자 더욱 적극적인 활동에 나서 전조선 순회강연회를 개최하고, 부여신궁 창건에 대표를 파견하여 조영공사(造營工事)를 하였다. 특히 1941년 12월 13일 대미 · 대영 선전포고(12.8)에 따르는 총후국민의 분기를 촉구하는 ‘결전하는 문화대강연회’를 부민관에서 개최하였다.
이 단체는 대표급 문인과 작가들이 총동원되다시피 하여 온갖 친일문필과 행동으로 내선일체와 전쟁지원에 참여하였다. 그러다 1943년 4월 17일 조선하이쿠작가협회(朝鮮俳句作家協會), 조선센류협회(朝鮮川柳協會), 국민시가연맹(國民詩歌聯盟) 등의 단체와 더불어 발전적으로 해체되고 조선문인보국회를 강화해 결성하였다.
이 단체는 ‘조선에 최고의 황도문학(皇道文學)을 수립한다’는 구호 아래 1천여 명의 문학자들이 모여 결성식을 갖고 선언문을 채택하였다. 조선문인보국회는 패전 때까지 전 조선은 물론 일본 · 중국 · 남방 등 각 전지(戰地)를 순회하면서 일본군을 위문격려하고 각종 문학연설회를 열어 징병과 징용, 정신대 동원에 앞장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