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형을 중심으로 발족한 조선건국준비위원회는 1945년 9월 6일 전국국민대표자대회에서 그 성립을 결의하였다. 곧 미군이 진주하여 민주주의 국가건설을 돕겠다는 미 제24군단 사령관 하지(John Reed Hodge) 장군의 포고문이 9월 2일 비행기로 서울시 일원에 발포되었고, 9월 6일에는 미군선발대가 김포비행장에 도착하여 조선호텔에서 일제측과 예비교섭을 시작하던 그 날 저녁, 조선건국준비위원회는 급히 전국인민대표자대회의 이름으로 건국을 선포하였다.
이 대회에서는 조직의 이름을 조선인민공화국으로 결정함과 동시에 중앙의결기관으로,55명으로 구성된 중앙인민위원과 20여 명의 후보위원,12명의 고문을 선출하였다. 55명의 중앙인민위원의 인적 구성은 민족주의자 9명, 여운형계의 중도좌파가 10명 내외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공산주의자였으며, 공산주의자들의 대부분은 박헌영계의 재건파공산당계열이었다.
1945년 9월 14일자로 중앙인민위원회의는 조선인민공화국의 성립을 결정하고, 일본제국주의의 잔존세력을 완전히 구축함과 동시에 자주독립을 방해하는 외세와 반민주주의적·반동적인 모든 세력에 대한 철저한 투쟁을 통하여 완전한 독립국가를 건설하여 진정한 민주주의사회를 실현하겠다고 선언하였다.
한편, 정강은 “정치적·경제적으로 완전한 독립국가의 건설을 기하고”, “일본제국주의와 봉건적 잔재세력을 일소하고, 전 민족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기본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충실을 기하며”, “노동자·농민과 기타 일체 대중생활의 급진적 향상”과 “세계 민주주의제국의 일원으로서 상호 제휴하여 세계평화의 확보를 꾀한다”는 것이었으며, 시정방침은 정강 실현을 위한 27개 항목의 정책으로, 이상주의적인 고도의 문화복지국가 건설을 다짐하는 내용이었다.
중앙인민위원회 각 부서는, 주석 이승만, 부주석 여운형, 국무총리 허헌, 내무부장 김구, 대리 조동호·김계림, 외무부장 김규식, 대리 최근우·강진, 재무부장 조만식, 대리 박문규·강병도, 군사부장 김원봉, 대리 김세용·장기욱, 경제부장 하필원, 대리 김형선·정태식, 농림부장 강기덕, 대리 유축운·이광, 보건부장 이만규, 대리 이정윤·김점권, 교통부장 홍남표, 대리 이순근·정종근, 보안부장 최용달, 대리 무정(武亭)·이기석, 사법부장 김병로, 대리 이승엽·정진태, 문교부장 김성수, 대리 김태준·김기전, 선전부장 이관술, 대리 이여성·서중석, 체신부장 신익희, 대리 김철수·조두원, 노동부장 이주상, 대리 김상혁·이순금, 서기장 이강국, 대리 최성환, 법제국장 최익한, 대리 김용암, 기획부장 정백, 대리 안기성 등으로 구성되었다. 조선인민공화국은 연합군의 진주가 임박한 상황에서 급박하게 구성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송진우 등 민족주의자들은 중국 충칭〔重慶〕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지하고, 귀국을 촉구하기 위하여 9월 1일 대한민국임시정부 환국환영회를 조직하였으며, 한국민주당의 창당을 서둘렀다. 이들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지지를 천명하기 위하여 9월 7일 ‘국민대회준비회’를 송진우·김성수·서상일·김준연·장택상 등 330명의 발기인 이름으로 발족하였다. 9월 8일에는 한국민주당 발기인 1,000여 명의 이름으로 된 조선인민공화국타도 성명서가 발표되었으며, 9월 16일에는 한국민주당이 정식으로 출범하였다.
이로써, 조선인민공화국을 지지하는 공산주의 계열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지하는 민족주의 계열의 팽팽한 대립이 나타났으며, 10월 10일 미군정은 “남한에는 미군정만 있을 뿐 다른 정부는 존재할 수 없으므로 정부를 참칭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성명을 발표함으로써 조선인민공화국을 부인하였다.
또한 조선인민공화국 주석으로 추대된 이승만은 10월 16일 미국에서 귀국하여, 10월 23일 정당 대표들을 망라한 ‘독립촉성중앙협의회’를 발족시킴으로써 조선인민공화국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표명하였으며, 11월 7일에는 방송을 통하여 정식으로 조선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회 주석 취임을 거절하였다.
11월 12일 여운형은 조선인민당을 발족시켰다. 조선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회를 정당으로 개편하기 위해 미군정청의 집회 허가를 얻어 11월 20일 전국인민대표자대회를 열었다. 700여 명이 모인 이 대회는 중앙인민위원회의 보강을 위하여 여운형·허헌·최용달·이승엽·홍남표·이기석·이여성·조두원·안기성·홍덕유·이상훈·정백 등 12명으로 구성된 전형위원만을 선출하였다.
12월 12일 남한주둔 미군사령관 하지 장군은 방송을 통하여 조선인민공화국이 정부행세를 하는 것은 비합법적인 일이므로 이를 단속할 것을 경고하였고, 이후 그 세력은 1946년 2월에 발족한 ‘민주주의민족전선’으로 집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