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경지(景至), 호는 풍옥헌(風玉軒)·만귀(晩歸). 조팽(趙彭)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문관전한 조종경(趙宗敬)이고, 아버지는 홍문관응교 조정기(趙廷機)이며, 어머니는 관찰사 강욱(姜昱)의 딸이다. 처는 동래정씨(東萊鄭氏)로 현감 정선복(鄭善復)의 딸이다.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79년(선조 12)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584년에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에 제수되었으며, 1590년에 선릉참봉(宣陵參奉)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중 선공감역(繕工監役)에 임명되었으나 곧 해직되고, 1601년 동몽교관(童蒙敎官)으로 복직되었다.
1604년 대흥현감에 제수되었다가 1607년에 파직되었고, 1609년(광해군 1) 호조좌랑으로 기용되었다가 1611년에 평택현감이 되었다. 1612년 신율(申慄)이 황혁(黃赫)과의 오랜 원한으로 역옥(逆獄)을 일으켰는데 이에 연루되어 옥중에서 죽었다.
성혼의 문하에서 단아한 행실로 인해 명성을 얻었으며, 경학에도 조예가 있어 그가 집무하는 관아에서 여러 동문들과 함께 『우계집(牛溪集)』을 편집, 출간하였다. 병조참판에 추증되고, 서천의 건암서원(建巖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