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옥천(玉川). 자는 무백(武伯), 호는 죽촌(竹村). 아버지는 부정 조유(趙瑜)이다.
세종 대에 무과에 급제하고, 1456년(세조 2) 병마절도사 재직 중에 성삼문(成三問) 등의 단종복위사건에 연루되어 아들 조철산(趙哲山)과 함께 죽임을 당하였다.
1779년(정조 3) 경연관(經筵官) 송덕상(宋德相)의 상계에 의하여 구기(舊基)인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죽림리에 정려가 건립되고, 1791년에 단종묘정에 배향되었다. 또, 구기에 건립된 겸천서원(謙川書院)과 동학사(東鶴寺)내에 건립된 숙모전(肅慕殿)에도 제향되었으며, 뒤에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절민(節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