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조열은 고려 충신으로, 호는 금은(琴隱)이다. 공민왕 때 공조판서를 지냈다. 고려가 망하자 낙향하여 거문고와 더불어 여생을 보냈다. 저서로는 《금은실기 琴隱實記》가 전한다.
조금호(趙金虎)는 1466년(세조 12) 무과에 급제한 뒤, 경상수군우후을 역임하고, 훈련부정(訓練副正)으로 정국원종공신(靖國原從功臣)에 올랐다. 양주목사를 역임하였고, 첨지중추부사 겸 내금위장을 지냈다.
조수천(趙壽千)은 1503년(연산군 9) 무과에 급제한 뒤, 1506년 선전관으로 정국원종공신에 올랐다. 함흥부사 · 밀양부사 · 충정병마절도사 · 경상수군절도사를 지냈다.
현재 묘역에 있는 10기의 묘는 가운데 조열의 묘는 고려 전형의 방형묘로 가로 4.6m, 세로 3.2m, 높이 1.5m 정도이고, 나머지는 일반적인 원형묘다. 이 묘들은 조선 전기에서 중기의 묘로서 당시의 묘지 배치 상태를 아는 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