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안 묘소

  • 역사
  • 유적
  • 고려 후기
  • 시도자연유산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에 있는 고려후기 문신·학자 조열 등 10기의 함안 조씨의 묘역.
시도자연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동철
  • 최종수정 2023년 03월 29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에 있는 고려후기 문신·학자 조열 등 10기의 함안 조씨의 묘역.

내용

1977년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조열은 고려 충신으로, 호는 금은(琴隱)이다. 공민왕 때 공조판서를 지냈다. 고려가 망하자 낙향하여 거문고와 더불어 여생을 보냈다. 저서로는 《금은실기 琴隱實記》가 전한다.

조금호(趙金虎)는 1466년(세조 12) 무과에 급제한 뒤, 경상수군우후을 역임하고, 훈련부정(訓練副正)으로 정국원종공신(靖國原從功臣)에 올랐다. 양주목사를 역임하였고, 첨지중추부사 겸 내금위장을 지냈다.

조수천(趙壽千)은 1503년(연산군 9) 무과에 급제한 뒤, 1506년 선전관으로 정국원종공신에 올랐다. 함흥부사 · 밀양부사 · 충정병마절도사 · 경상수군절도사를 지냈다.

현재 묘역에 있는 10기의 묘는 가운데 조열의 묘는 고려 전형의 방형묘로 가로 4.6m, 세로 3.2m, 높이 1.5m 정도이고, 나머지는 일반적인 원형묘다. 이 묘들은 조선 전기에서 중기의 묘로서 당시의 묘지 배치 상태를 아는 데 도움이 된다.

참고문헌

  • - 『금은실기(琴隱實記)』

  • - 『경남문화재대관』-도지정편-(경상남도, 1995)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