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야기문 ()

조선시대사
문헌
조선 후기 숙종 대 서문중이 조선 왕조의 역사를 기사본말체의 형식으로 정리한 야사서.
이칭
이칭
기문
문헌/고서
편찬 시기
1699년
저자
서문중
편저자
서문중
권책수
10책본|11책본
권수제
조야기문
판본
필사본
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국립중앙도서관
내용 요약

『조야기문(朝野記聞)』은 조선 후기, 숙종 대 서문중(徐文重)이 조선 왕조의 역사를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의 형식으로 정리한 야사서(野史書)이다. 현종 연간부터 편찬하기 시작하여 1699년(숙종 25)에 8권으로 완성하였으나 뒤에 10책본, 11책본으로 수정되었다. 조선 왕조사를 다룬 우리나라에서 나온 최초의 기사본말체 사서(史書)라고 할 수 있다.

정의
조선 후기 숙종 대 서문중이 조선 왕조의 역사를 기사본말체의 형식으로 정리한 야사서.
저자 및 편자

『조야기문』의 편찬자와 관련하여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서는 ' 서문중(徐文重) 가장(家藏)'이라고 적어서 서문중 집안의 소장이라 밝히고 있다. 그래서 서문중을 단지 『조야기문』의 소장자로 보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영 · 정조 대 나온 각종 야사류의 인용서에서 모두 저자를 서문중이라고 적고 있어, 처음 『조야기문』을 편찬한 이는 서문중으로 보인다. 그런데 10책본이나 11책본에서 추가된 권9~권11의 내용 가운데 서문중과 관계된 부분을 주1하여 공란으로 처리한 부분이 있으므로 권9 이하는 서씨 가문 사람이 증보하면서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서지사항

서문중본(徐文重本) 『조야기문』의 처음 모습은 8권이었다. 현재 남아 있는 증보본(增補本)은 크게 10책본과 11책본으로 나눌 수 있다. 장서각본(藏書閣本)에 소장된 10책본은 권8을 이어 권9와 권10이 추가된 것이다. 제목에서 '조야기문권지구속(朝野記聞卷之九續)'과 '조야기문권지십속(朝野記聞卷之十續)'이라고 적어 속편으로 작성되었음을 명기하고 있다.

11책본으로 장서각본과 국립중앙도서관본이 있다. 두 본 모두 따로 속편임을 명기하지 않고 계속 이어 서술하였으며, 권11에는 임부(林溥)와 이잠(李潛)의 옥사와 관련된 「병술옥사(丙戌獄事)」를 첨가하고 있다.

두 책의 차이를 살펴보면 장서각 소장 11책본은 권8의 「조야기문발(朝野記聞跋)」 뒤에 「의성군시장(宜城君諡狀)」이 제책 과정에서 첨가되어 있다. 그리고 장서각 11책본의 권11 끝에는 실록 주2 내용이 일부 수록되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11책본은 권8 뒤에 아예 서문중이 쓴 「조야기문발」과 참고문헌이 없으나 전체 내용에서 보면 장서각 소장 10책본에 수록된 것과 같다. 편찬 순서는 장서각 11책본이 장서각 10책본보다 먼저 만들어진 것이거나 그것을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편찬 및 간행 경위

『조야기문』의 편찬 시기를 보면 현종 연간부터 편찬하기 시작하여 8권까지의 내용은 발문이 있는 1699년( 숙종 25)에 일단 완성하였으나 뒤에 10책본, 11책본으로 수정되었다. 그 시기는 1730년( 영조 6) 이전에 현재 전하는 모습을 갖추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저술 동기로는 우리 나라의 전고에 대하여 잘 모른다는 점과 기록들이 산일되어 잘 전해지지 않는다는 점과 함께 각종 정치적 사건에 대한 정파 간의 이해와 동향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 있었다.

구성과 내용

권1은 간단한 연대기적 사항을 주로 모은 것이다. 특정 주제들을 ‘고사(故事)’라는 표현으로 정리하였다. 권2 이하의 기사는 각종 표제의 사항들에 대해 발생 원인을 적고, 이어 사건의 진행에 따른 관련 자료를 수록하였다.

주제는 대체로 군주의 왕위 승계, 각종 통치 행위, 반란과 옥사, 사화(士禍)주3 등에 대한 것이다. 글의 구성을 보면 단위 사건별로 사건의 실마리가 된 일을 적고 이에 전개된 과정에서의 일들을 수록하는 형식을 취하였다.

의의 및 평가

우리 나라 역사서들은 대체로 기전체(紀傳體)편년체(編年體) 사서의 형태로 편찬되었다. 조선시대에 야사(野史)가 등장하면서 주제별 서술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는데, 시간적 순서나 내용적인 면에서 조선 왕조의 전 시기를 다룬 야사형 사서로서의 형태를 갖춘 것은 『조야기문』부터라고 할 수 있다.

『조야기문』에 이르러 체재적으로 기사본말체 역사서의 형식을 갖추었던 점, 조선 왕조사를 통사적으로 정리하였던 점, 주4이라는 형식으로 한 사건들을 모아 기술한 것은 기존의 야사에서 주로 취하였던 편년적 역사 서술과는 다르다는 점 등에서 우리나라에서 나온 최초의 기사본말체 사서라고 평가할 수 있다.

참고문헌

원전

『조야기문(朝野記聞)』

단행본

『朝野記聞(조야기문)(한국학자료총서 27)』(한국학중앙연구원, 2000)
이이화 편저, 『조선당쟁관계자료집 1』(여강출판사, 1988)

논문

박인호, 「『조야기문』에 대한 사학사적 고찰」(『됴야긔문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2007)
주석
주1

꺼리고 싫어함.    우리말샘

주2

법전이나 담당부서의 기록으로도 전례를 찾을 수 없을 때, 실록에서 선례를 찾아 모범으로 삼았다. 또한, 역사적 재평가가 요구되는 사안이 발생할 때에도 실록을 통해 사실을 확인하였는데, 왕명을 받은 사관만이 제한적으로 열람할 수 있었다.

주3

당파를 이루어 서로 싸우던 일    우리말샘

주4

들은 것을 기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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