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야기문』의 편찬자와 관련하여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서는 ' 서문중(徐文重) 가장(家藏)'이라고 적어서 서문중 집안의 소장이라 밝히고 있다. 그래서 서문중을 단지 『조야기문』의 소장자로 보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영 · 정조 대 나온 각종 야사류의 인용서에서 모두 저자를 서문중이라고 적고 있어, 처음 『조야기문』을 편찬한 이는 서문중으로 보인다. 그런데 10책본이나 11책본에서 추가된 권9~권11의 내용 가운데 서문중과 관계된 부분을 기휘(忌諱)하여 공란으로 처리한 부분이 있으므로 권9 이하는 서씨 가문 사람이 증보하면서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서문중본(徐文重本) 『조야기문』의 처음 모습은 8권이었다. 현재 남아 있는 증보본(增補本)은 크게 10책본과 11책본으로 나눌 수 있다. 장서각본(藏書閣本)에 소장된 10책본은 권8을 이어 권9와 권10이 추가된 것이다. 제목에서 '조야기문권지구속(朝野記聞卷之九續)'과 '조야기문권지십속(朝野記聞卷之十續)'이라고 적어 속편으로 작성되었음을 명기하고 있다.
11책본으로 장서각본과 국립중앙도서관본이 있다. 두 본 모두 따로 속편임을 명기하지 않고 계속 이어 서술하였으며, 권11에는 임부(林溥)와 이잠(李潛)의 옥사와 관련된 「병술옥사(丙戌獄事)」를 첨가하고 있다.
두 책의 차이를 살펴보면 장서각 소장 11책본은 권8의 「조야기문발(朝野記聞跋)」 뒤에 「의성군시장(宜城君諡狀)」이 제책 과정에서 첨가되어 있다. 그리고 장서각 11책본의 권11 끝에는 실록 고출(考出) 내용이 일부 수록되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11책본은 권8 뒤에 아예 서문중이 쓴 「조야기문발」과 참고문헌이 없으나 전체 내용에서 보면 장서각 소장 10책본에 수록된 것과 같다. 편찬 순서는 장서각 11책본이 장서각 10책본보다 먼저 만들어진 것이거나 그것을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권1은 간단한 연대기적 사항을 주로 모은 것이다. 특정 주제들을 ‘고사(故事)’라는 표현으로 정리하였다. 권2 이하의 기사는 각종 표제의 사항들에 대해 발생 원인을 적고, 이어 사건의 진행에 따른 관련 자료를 수록하였다.
주제는 대체로 군주의 왕위 승계, 각종 통치 행위, 반란과 옥사, 사화(士禍)와 당쟁(黨爭) 등에 대한 것이다. 글의 구성을 보면 단위 사건별로 사건의 실마리가 된 일을 적고 이에 전개된 과정에서의 일들을 수록하는 형식을 취하였다.
우리 나라 역사서들은 대체로 기전체(紀傳體)나 편년체(編年體) 사서의 형태로 편찬되었다. 조선시대에 야사(野史)가 등장하면서 주제별 서술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는데, 시간적 순서나 내용적인 면에서 조선 왕조의 전 시기를 다룬 야사형 사서로서의 형태를 갖춘 것은 『조야기문』부터라고 할 수 있다.
『조야기문』에 이르러 체재적으로 기사본말체 역사서의 형식을 갖추었던 점, 조선 왕조사를 통사적으로 정리하였던 점, 기문(記聞)이라는 형식으로 한 사건들을 모아 기술한 것은 기존의 야사에서 주로 취하였던 편년적 역사 서술과는 다르다는 점 등에서 우리나라에서 나온 최초의 기사본말체 사서라고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