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조우희의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조우희는 고려 공민왕 때 홍건적의 침입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우고, 우왕 때 왜구를 토벌한 명장이다. 그의 아들로는 벼슬이 문하시중에 이른 조민수(曺敏修)와 경상도 병마절도사와 초토안무사(招討按撫使)를 지낸 조익수가 있다.
묘소에는 두기의 묘가 상하로 위치하고 있다. 위쪽의 묘가 아버지 조우희의 묘이며, 아래쪽 묘가 아들 조익수의 묘다. 조우희의 봉분은 호석을 설치하지 않았다. 묘비는 높이가 1m 정도이며 가로로 길게 만들어져 마치 호석과 같이 봉분의 전면을 가리고 있다. 묘비 앞에는 상석과 향로석이 있고, 전면으로 좌우에 문인석을 두었다.
조익수의 봉분은 장대석을 이용해 호석을 설치하였다. 봉분 앞에는 상석이 있고, 향로석을 꽂던 것으로 추정되는 대석이 있다. 묘비는 봉분 우측편에 위치하는데, 하부에는 귀부를 두고 위에는 단순하게 조각한 이수를 얹었다. 상석 전면 좌우에는 문인석이 있는데 머리 모양이나 얼굴 조각이 매우 독특하다.
두 묘의 조성방식이나 석물들은 모두 원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이 묘소들은 고려와 조선 초기의 묘제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