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지성균관사, 호조판서,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교리·장령·헌납 등을 차례로 역임하고, 1749년 보덕에 이어 응교가 되었다. 이듬해 사간·겸필선(兼弼善)을 거쳐, 1751년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르고, 좌윤·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도승지를 역임한 뒤 1754년 대사간·대사성을 거쳐 전라도관찰사가 되었다.
이 때 나주의 객사(客舍)에 조정에는 간신들이 득실거리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있어 장차 난리가 일어날 것이라는 내용의 괘서(掛書)가 나붙어 민심이 흉흉하자 직접 현장에 달려가 범인 색출을 진두지휘하였으며, 마침내 소론 윤지(尹志) 일당을 일망타진한 뒤 추국(推鞫)하여 처단하였다.
이어서 1756년 평안도관찰사·이조참판이 되었고, 이듬해 대사헌을 거쳐 1759년 호조판서가 된 뒤 병조판서와 판윤·예조판서·형조판서·함경도관찰사 등을 차례로 역임하고, 1766년 다시 호조판서가 되어 진연도감당상(進宴都監堂上)을 겸하였다.
이듬해 좌참찬으로 지경연사(知經筵事)를 겸하고, 이어 교동수사(喬桐水使)·판의금부사·지성균관사(知成均館事)를 거쳐 1772년 다시 호조판서가 되고, 이어서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청선고(淸選考)』
- 『이계집(耳溪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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