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치행(穉行), 호는 송하옹(松下翁). 할아버지는 판결사 조하기(曺夏奇)이며, 아버지는 개성부유수 조명교(曺命敎)이다.
문음(門蔭)과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1766년(영조 42) 처음 벼슬길에 나간 뒤 1781년(정조 5) 선공감주부가 되었으며, 1784년 예조정랑을 역임하였다. 이어서 선공감부정(繕工監副正)을 거쳐 보덕(輔德)이 되어 책례도감상례(冊禮都監相禮)를 겸하였다.
그 뒤 안악군수·광주목사(廣州牧使) 등 3현·2군·1목의 수령을 역임하고 돌아와 1791년 호조참의가 되었으며, 1797년에는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가 되었다. 그림과 글씨에 능하였는데, 풀·대나무 등의 묵화를 잘 그렸다.
글씨는 초서·예서를 잘 써서 일찍이 서사관(書寫官)을 역임하였으며, 위로는 대신들로부터 아래로 조례(皁隷)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그의 글을 얻으려 하였다. 작품으로는 「유점사풍악당대사비(楡岾寺楓嶽堂大師碑)」·「이보혁무신기공비(李普赫戊申紀功碑)」·「용흥잠저고정기(龍興潛邸古井)」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