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이원(而元). 회양부사(淮陽府使) 조신(趙愼)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공조좌랑 조안평(趙安平)이고, 아버지는 한산군(漢山君) 조온지(趙溫之)이며, 어머니는 예빈시판사 오축(吳軸)의 딸이다.
1453년(단종 1) 진사시에 합격하고, 1465년(세조 11)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 1466년『동국통감』의 편찬에 수찬낭관으로서 참여하였다. 1467년 예문관봉교·승정원주서를 지냈고, 1468년(예종 즉위년) 10월 남이(南怡)의 옥사를 다스린 공으로 익대공신(翊戴功臣) 3등에 책록되었다.
1469년 사헌부지평·행세자시강원문학을 거쳐 춘추관수찬관으로 『세조실록』 편수에 참여하였고, 1470년(성종 1) 형조참의가 되었다. 1481년에 한성부좌윤으로 한평군(漢平君)에 봉하여지고, 이듬해 이조참판이 되었다. 1489년 호조참판으로 성절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서 대사헌·강원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이어 다시 대사헌·예조참판·경상우도병마절도사 등을 지냈다. 1494년 12월 사은사에 배명(拜命)되었으나 성종의 죽음으로 중지하였다.
1495년(연산군 1) 한성부좌윤, 같은해 8월 공조참판, 1498년 오위도총부부총관을 겸임하고, 춘추관동지관사(春秋館同知館事)로 『성종실록(成宗實錄)』의 편수에 참여하였다가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문장이 뛰어나 성종 대의 문예에 공헌하였다. 시호는 공숙(恭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