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개항기 때, 개성유수, 협판내무부사, 협판교섭통상사무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881년에는 조사시찰단(朝士視察團)의 일원으로 40일 동안 일본의 행정·산업·교육 등을 시찰하고 귀국하여 신문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그뒤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의 통리기무아문사(統理機務衙門事)가 되었고 통리기무아문의 12사(司)를 7사로 개편하였을 때 전선사당상경리사(典選司堂上經理事)가 되었다.
이듬해 임오군란으로 청나라의 마젠충[馬建忠]이 군대를 인솔하고 서울에 올라올 때 영접관(迎接官)이 되어 마젠충을 맞이하였다. 1883년 정월 통리내무아문을 개편하여 만든 협판군국사무에 임명되어 이무(吏務)에 종사하였고, 같은해 이조참판을 역임하였다.
1884년 갑신정변 후 개화당일파가 물러나고 내각이 조직될 때 개성유수가 되었다. 이듬해 협판내무부사를 거쳐 1886년 협판교섭통상사무(協辦交涉通商事務)에 전임하였다. 편저서로는 『일본문견사건(日本聞見事件)』이 있다.
참고문헌
- 『한국도서해제』(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소,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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