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영 ()

일본문부성시찰기
일본문부성시찰기
근대사
인물
개항기 때, 개성유수, 협판내무부사, 협판교섭통상사무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경취(景翠)
송간(松磵)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33년(순조 33)
사망 연도
1886년(고종 23)
본관
풍양(豊壤)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개항기 때, 개성유수, 협판내무부사, 협판교섭통상사무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풍양(豊壤). 초명은 조만화(趙晩和). 자는 경취(景翠), 호는 송간(松磵). 조운섭(趙雲涉)의 아들로, 조운철(趙雲澈)에게 입양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64년(고종 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 1875년 6월 성균관 대사성이 되었다.

1881년에는 조사시찰단(朝士視察團)의 일원으로 40일 동안 일본의 행정·산업·교육 등을 시찰하고 귀국하여 신문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그뒤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의 통리기무아문사(統理機務衙門事)가 되었고 통리기무아문의 12사(司)를 7사로 개편하였을 때 전선사당상경리사(典選司堂上經理事)가 되었다.

이듬해 임오군란으로 청나라의 마젠충[馬建忠]이 군대를 인솔하고 서울에 올라올 때 영접관(迎接官)이 되어 마젠충을 맞이하였다. 1883년 정월 통리내무아문을 개편하여 만든 협판군국사무에 임명되어 이무(吏務)에 종사하였고, 같은해 이조참판을 역임하였다.

1884년 갑신정변 후 개화당일파가 물러나고 내각이 조직될 때 개성유수가 되었다. 이듬해 협판내무부사를 거쳐 1886년 협판교섭통상사무(協辦交涉通商事務)에 전임하였다. 편저서로는 『일본문견사건(日本聞見事件)』이 있다.

참고문헌

『한국도서해제』(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소, 1971)
관련 미디어 (2)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