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양(漢陽). 아버지는 판중추원사 조혜(趙惠)이며, 어머니는 의정부찬성 안순(安純)의 딸이다.
1451년(문종 1) 문음(門蔭)으로 인수부승(仁壽府丞)에 서용된 뒤 주부를 거쳐, 1455년(세조 1) 직장으로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 3등에 책록되었다. 곧 승훈랑(承訓郎)에 승진하면서 사헌부감찰에 발탁되었고, 이어 칠참도찰방(七站道察訪)·신계현령·장단군수 등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이어 1467년경 연안부사에 제수되고, 그 임기중에 선정으로 특별히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승진되었다. 1471년(성종 2) 풍천도호부사(豊川都護府使)로 나갔다가 1474년 첨지중추부사 겸 오위장(僉知中樞府事兼五衛將)으로 입조하였다. 이듬해 양주목사로 나갔으며, 개만(箇滿)과 함께 형조참의로 발탁되었다.
그러나 곧 인척인 이조판서 강희맹(姜希孟)으로 인하여 부당하게 제수되었다는 지탄을 받고 여주목사에 개수(改授)되었다.
이어 1482년 성주목사가 되고, 1486년 강화부사를 거쳐 1491년 안동대도호부사로 파견되었다가 임지에서 죽었다. 30여 년에 걸쳐 1현·1군·3부·4주의 목민관을 역임하였는데 선정으로 명성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