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철제 ()

목차
신종교
인물
일제강점기 증산교 계통의 태극도를 창립한 종교창시자.
이칭
정산(鼎山)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95년(고종 32)
사망 연도
1958년
본관
미상
출생지
경상남도 함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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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증산교 계통의 태극도를 창립한 종교창시자.
내용

호는 정산(鼎山). 경상남도 함안 출신. 항일운동을 하던 아버지 용모(鏞模)를 따라 15세 때 만주 심양으로 가서 구국운동에 가담하다가 김혁(金赫)으로부터 증산(甑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대사(大事)에는 도력(道力)이 필요함을 절감, 입산수도하던 중 23세 때 강일순(姜一淳)의 『태극도리(太極道理)』를 읽고 개안영통하였다.

같은 해 귀국하여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다가 1918년 전라북도 태인면 태흥리에서 무극도(無極道)를 창도, 증산사상을 포교하여 많은 신도가 모여들었다. 그 뒤 3년 동안 120여 칸의 교당을 짓고 10만의 신도를 가지는 대교단을 이루었다.

세상에서는 그를 조천자(趙天子)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또한, 진업단(進業團)이라는 신도단체를 만들어 충청남도 안면도와 원산도에서 간척지공사를 벌여, 안면도에는 20만 평의 농경지를, 원산도에는 대규모 염전을 만들었다.

1930년 평안북도 무산의 국유림을 채벌하기 위하여 400여 명의 신도를 보내었고, 1932년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의 사금광과 충청북도 음성군의 무극광산을 채굴하였다. 이와같이, 황무지와 간척지 개척, 수리사업 및 산업장려로 수많은 빈민을 구제하는 사업을 벌이며 포교활동을 전개하였으나, 1936년 일제에 의하여 교단이 해체되고 본부가 철거당하게 되었다.

1945년 광복이 되자 종교활동을 다시 시작하여, 1948년에 본부를 부산 보수동에 정하고 태극도라는 이름으로 교명을 바꾸었다. 1955년에는 다시 본부를 부산 감천동으로 옮겨 3,000세대의 신도를 집단 이주시킴으로써 대규모 신앙촌을 형성하였다.

참고문헌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韓國新宗敎實態調査報告書)』(한국종교학회, 1985)
『태극도요감(太極道要覽)』(태극도신도회,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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